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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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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14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3 - 6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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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는 당과 토번의 군사 충돌을 배경으로 세력을 확대시키고, 양국의 역학관계를 좌우하는 중요 변수로 성장하였다. 당조관계는 이러한 국제적 배경 위에 진행되었다. 검남도는 당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던 토번과 남조를 상대하는 번진이며, 그 중요도는 남조가 당과 토번의 역학관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시점에 더욱 상승하였다. 검남도 무인세력들은 검남절도사 임명에 간여할 만큼 그 실력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너무 강력한 토번ㆍ남조를 독자적으로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당 중앙의 군사적 보호를 필요로 했으며, 그 통치를 수용해야 했다. 검남서천절도사의 임무는 西抗吐蕃 南撫蠻獠이다. 토번에 대해 군사적 임무가 부여된 반면에 남조에 대해서는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85년에 검남서천절도사에 임명된 위고는 접변한 여러 만ㆍ강 등 이민족들을 초무하고, 또 천보전쟁 이후 40여년간 단절되었던 남조를 초무하여 국가 관계를 회복시켰다. 그 결과 794년에 남조에 대한 책봉이 이루어졌고, 795년에 統押近界諸蠻及西山八國雲南按撫使(統押蕃使)의 직함을 부여받았다. 서천절도사는 다른 압번사와 마찬가지로 입당사절 관리ㆍ물품교역관리ㆍ蕃情의 보고 등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특별히 남조와 매우 활발하게 通使하는 특수성을 갖는다. 이는 검남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당ㆍ토번ㆍ남조)가 정치ㆍ군사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천절도사는 강력한 남조를 상대하여 끊임없는 通使로 갈등과 충돌을 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淄靑平盧節度使가 押新羅渤海兩蕃使로서 발해ㆍ신라를 상대로 주로 경제ㆍ문화적 교류에 중점을 두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서천절도사는 남조와의 외교에서 중앙의 명령을 수행하고 입당사절을 관리하는 관문의 역할만 담당했던 것은 아니다. 서천절도사가 남조를 초무하거나 또는 남조와 충돌하게 되면 이는 곧 당과 남조의 관계로 반영되어 나타났기 때문에 당은 서천절도사의 상주(남조 초무, 남조에 황금인 하사, 약탈당한 백성의 색출, 강화사신파견 등)를 대부분 수용하고 있다. 오히려 서천절도사가 당의 남조에 대한 정책을 주도했다고 보이며, 다른 변방 번진이 당의 대외관계에 갖는 비중에 비해 당조관계에서 서천절도사가 갖는 외교적 비중은 무척 높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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