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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염경이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36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145 - 16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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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왕 酋龍(859-877)은 남조가 당에게 가장 위협적이고 공격적이던 시점에 남조를 통치한 인물이다. 남조왕 酋龍은 즉위한 그해(859, 大中13)에 당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였으나, 오히려 이를 계기로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독자적 군주의 길을 천명하였고, 당의 安南을 점령ㆍ통치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군사정책을 추진하였다. 異牟尋 死後 남조의 왕권이 약화되고 이후 남조는 白蠻系 유력씨족의 연합체국가로 변모했다는 武內剛의 주장과 달리, 남조왕 추룡은 왕의 직속군과 私的 主從관계에 있는 諸蠻, 그리고 白蠻系 유력씨족이 이끄는 군사 세력을 총출동시켜 交州를 점령ㆍ통치하였던 것이다. 남조에서는 盆地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군사적 진격로와 동일선상에서 확장되며 정치ㆍ군사와 상업적 기간망으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 중에서도 남조를 관통하는 安南-天竺의 교통로가 가장 핵심적이다. 또한 安南의 交州는 당시 廣州를 압도하는 추세의 국제적인 무역항구로, 남조는 이렇게 유의미한 안남을 自國의 통치영역으로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남조는 안남을 확보하는데 실패하였고, 남조왕 추룡의 對唐政策은 和親과 敵國禮의 國交再開라는 外交的 方策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남조가 安南을 확보하는데 실패하자 당과의 교류를 통해 남조의 교통망을 활성화시키는 방책을 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남조왕 酋龍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劍南西川의 成都로 출격하며 당을 압박하였다. 그 결과 876년에 劍南西川節度使로부터 和親의 盟約을 제안받으며 양국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즉 남조왕 酋龍은 남조의 상징화된 존재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點蒼會盟 이후 60여년간 계속되던 唐詔관계를 벗어나 大禮國의 황제로서 당에 대해 군사적ㆍ외교적 방면에서 공격적인 정책을 펼쳤던 군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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