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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35호
발행연도
2005.1
수록면
245 - 28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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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화려한 대형 연못 옆에 앉아 있는 보살상 그림을 취득하였다. 그림에 있는 "慈聖宣文明肅皇太后"라는 인장은 萬曆年間(1573-1619)의 孝定莊皇后 李氏(1546-1614)의 것으로 밝혀졌다. 적외선 사진을 통해 1593년의 연대가 밝혀졌고, 도상 연구도 이뤄졌다. 이 논문은 이 그림의 역사와 동시대의 유사한 도상 속에서의 위치를 고찰하고,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 황실의 종교적․정치적 의미를 해석해 보았다. 그림에는 꽃과 환상적인 괴석들이 있는 정원에서 장식용의 대리석난간에 기대어 있는 보살이 보인다. 보살은 금색의 원화문이 있는 비단의 백의를 입고, 화려한 영락을 걸쳤으며, 영락에서 뻗어 나온 긴 리본이 난간 위로 끌린다. 보관의 아미타상은 이 보살이 관음인 것을 알려주며, 정병 속의 버드나무 가지, 죽림, 흰 앵무새, 연잎 위에 서서 보살을 경배하는 선재동자의 존재로 인해 보타락가산의 수월관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중국의 궁궐과 관음보살의 주처를 동시에 환기시킨다. 그림의 도상은 관음임을 명백히 하면서 또한 구체적인 역사적 정체성을 지닌다. 慈聖皇太后라고 알려진, 李 皇后는 그녀의 아들이 9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을 때 권좌에 올랐고, 神宗이 성인이 된 후에도 궁정에서 유력한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1586년에 황궁의 황후 거처인 慈寧宮에서 마치 그림에 묘사된 것 같은 범상치 않은 연꽃이 피었다. 이에 놀란 만력제는 신하들에게 꽃을 본 후 그에 관한 시를 쓰도록 명하였다. 다음해인 1587년, 황후는 보살이 그녀에게 九蓮經으로 알려진 경전을 주는 꿈을 꾸었다. 황후는 잠에서 깨어나 경전을 완벽하게 기억해 내었다. 황후 사후 2년 뒤인 1616년에는 아들인 황제가 佛說大慈至聖九蓮菩薩化身度世尊經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찍어내었다. 이 경전에서 부처는 구련보살이 세상에 환생할 것을 예언한다. 구련보살의 화신으로서 황후를 인정하는 것은 궁정에서 그녀의 지위를 지탱하는 데 유용했다고 지적된 바 있다. 비록 그녀가 황제의 생모이긴 했지만, 불교를 통한 신적 위치로의 상승은 그녀가 자신만의 명성과 영광을 즐기도록 해주었다. 미술에서 관음과 궁정미인의 연결은 여기에서 논의된 명대와 청대의 모든 작품에서 다양한 수위로 나타나며, 당대의 유명한 궁중 사녀화가이자 수월관음도로도 유명했던 周昉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방 전칭의 <Court Ladies with Flowers in Their Hair >는 반투명한 옷의 주름을 그리는 그의 재능을 잘 보여준다. 명대에는 궁정 회화 전통이 관음의 화현으로써 실제의 궁정여인인 이황후와 불교의 신격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데에 이용되었다. 청대 예술가들은 이 이미지를 실제이건 조작된 것이건 간에,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과의 연결을 줄이는 방식으로 재해석하였다. 청대 예술가들에게 있어, 명대의 도상은 분명 티벳 불교에 열광했던 당시 만주 궁정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 새로이 바뀔 필요가 있는 모델이었다. 그들은 호화로운 비단과 간략화된 배경 속에 세속적인 미인들을 묘사함으로써 보다 세련되고 현란한 미술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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