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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03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41 - 196 (5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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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변동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米價이다. 米價는 1918년부터 1927년까지 대체로 상승 추세이다. 1918년 11月 1担 4.32元에서 1925年 11月은 1担 9.90元으로 129.2% 상승했다. 1921년-1923년의 平均 米價는 1石에 6.51元이다. 1909년-1912년의 石당 평균 4.0元과 비교하면 62.75% 상승이다. 1932-1934년의 石당 평균 7.44元은 1921년-1923년 기간 대비 14.29% 상승했다. 이것을 보면 1920년대 전반의 米價 상승이 1930년보다 현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米價의 상대 물가를 알기 위해 소금 값을 비교해 보면 1921년에서 1925년 사이 米價는 22.2% 상승했는데 소금은 같은 기간 12.9% 상승했다. 洋油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인데 米價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농민 소득과 구매력이 향상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소금 가격은 1921년에서 1927년까지 錢文値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주고 있지만 基軸 통화인 銀元 가격은 1926년까지 안정 속의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鹽價의 안정에는 洋鹽 수입의 증가와 精鹽公司 설립 등이 기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면화 가격은 1918년 11月부터 1920년 까지는 비슷하게 유지되거나 하락하고 있다. 반면 1921년부터 1925년까지는 지속적인 상승추세이다. 1926년과 1927년은 상승세가 둔화되거나 하락하고 있다. 1934년경 長沙의 면화 가격은 1918년 11月 가격과 동일하다. 1920년대 전반보다 1930년대 면화 가격은 하락하고 있다. 茶油 가격도 1918년 11月부터 1927년까지 지속적인 상승 추세가 주된 흐름이다. 錢文値는 가파른 상승률을 보인 것은 통화팽창의 결과이다. 󰡔長沙大公報󰡕에 桐油 가격은 1921년부터 등장한다. 이 시기 桐油 수출액의 증가와 관련 있다 생각된다. 桐油는 錢文値로는 1921년부터 1927년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한다. 銀元가격은 1925년과 1926년에 부분 하락세를 보이다가 1927년에 다시 상승한다. 1934년경 桐油 가격은 역시 1920년대보다 하락하고 있는데 이것은 桐油 수출의 감소와 관련 있을 것이다. 洋油는 대표적인 수입 상품이다. 錢文으로서는 대체로 상승세이지만 銀元은 하락 안정세이다. 계속 내리다가 1927년에 부분적으로 반등했지만 1921년 수준보다 낮다. 화폐 남발에 의한 혼란 속에서도 銀元이 기축 통화 역할을 하였다. 상인들이 銀元 결제를 요구하거나 가격 표시를 銀元으로 하는 등으로 시장 경제를 유지하였다. 1921년에서 1927년 사이는 銀元가격 기준으로 안정 속의 상승세가 주조이다. 이것은 1930년대 전반보다 상승률이 높은 것이었다. 임금 수준에 대해서는 日給을 기준으로 각 縣의 27개 업종의 평균 임금은 0.13元이었다. 이것은 木匠의 평균 임금과 일치한다. 雇農의 日給은 0.11元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雇農의 日給으로 구매 가능한 鹽은 1.05斤, 구매 가능한 米는 평균 1.93斤이었다. 木匠의 경우에 구매 가능한 소금은 평균 1.15斤, 구매가능 米는 평균 2.16斤이었다. 식사 제공의 임금을 기준으로 했는데 非식사 제공의 경우 임금은 이보다 높다. 임금 수준이 높은 지역은 일급이 식비보다 많은데 그렇지 않은 지역은 하루 日給과 食費가 비슷한 경우를 보이고 있다. 임금의 장기 변동 추세를 보면 물가 상승과 함께 상승하고 있다. 汝城縣에서 임금의 米 구매력을 비교하여 민국시기에 실질 임금이 상승한 것을 밝힌 바 있다. 󰡔湖南實業志󰡕와 지방지 등에서 임금이 물가와 연동된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고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도 목격되고 있다. 1922년 이래 고조된 전국적 노동운동이 호남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생각된다. 무역과 물가에 대해서 종래 제국주의 침략 고조는 무역의 신속한 발전을 가져오고 洋商들의 농간으로 물가는 급등했다고 인식해왔다. 그런데 수입품 물가는 무역 촉진으로 수입량이 증가할수록 가격 하락에 영향을 주고 있다. 洋油의 공급 증가가 가격 하락을 가져온 것이 대표적인 실례이다. 수출품의 경우 무역 확대로 수출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 대표적 수출품인 桐油의 경우 1차 대전 이후 1921년부터 1927년 사이에는 지속적 수출 증가로 가파른 가격 상승을 나타낸다. 반면 1930년대 수출 부진으로 가격이 하락하였다. 광산물도 1차 대전 기간 수출 증가로 가격이 상승했다가 전후 수출 부진으로 가격 폭락을 경험했고 이후 점차 수출 회복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역과 경기에 대해서 살펴보면 1차 대전 후 제국주의 열강의 재 도래와 침략강화로 물가 급등과 인민 생활의 부담 가중이라는 도식과 호남의 현실은 부합되지 않는 것 같다. 관련 사료를 검토하면 대부분 1921년에서 1926년 또는 1928년까지도 好況임을 지적하고 있다. 거의 공통적으로 민국 19년(1930) 이후 경제 불황을 논하고 있다. 호남의 수출입 동향을 보면 1925년에서 1928년까지는 교역량이 많지만 적자, 즉 入超가 많다. 그런데 1932년에서 1934년은 出超, 즉 흑자 무역이지만 1920년대에 비해 교역량은 급감하고 있다. 이를 보면 경기는 무역의 적자보다는 교역량의 증감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료가 1930년 이후 불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역량과 상황에서 나타나는 1930년대는 불황형 흑자 무역이었다고 생각된다. 1차 대전의 기간 제국주의 열강의 일시적 후퇴와 전쟁 수요 증가로 중국은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終戰후 제국주의 열강의 재 도래와 침략고조, 이로 인한 신속한 무역의 발전이 물가 급등과 중국 인민의 부담 가중을 초래했다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적어도 호남을 소재로 실증 연구를 해보면 1921년부터 1927년 사이는 무역이 증대되고 물가는 안정 속의 상승세였고 상업이 번성했다. 당시인 스스로 상대적인 호경기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은 단일한 결사체가 아니라 상호 경쟁 관계의 독립체이고 동일 국가 안의 개별 상인들 역시 무한 경쟁 상태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주의 경제침략의 구체 상황을 분석할 때 민족주의 감정의 과잉은 자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Price Fluctations in Hunan, 1918-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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