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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67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79 - 11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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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후기 光海君代 佛事 연구의 일환으로 안동 仙刹寺 목조석가불상의 造成發願文을 중심으로 살펴본 글이다. 이 조성발원문은 1622년 淸溪寺 齋會와 왕실 內佛堂 역할을 담당했던 慈仁壽 兩寺 佛事와의 상관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광해군의 불교계 지원의 일단을 짐작케하는 1622년의 불사는, 1) 청계사 齋會, 2) 3월의 『妙法蓮華經』 전 7권 개판, 3) 5월의 慈壽寺와 仁壽寺 兩寺의 佛事, 4) 7월에 해인사 藏經版殿 重修 佛事 등이다. 이 중 청계사 재회와 『妙法蓮華經』 개판은 광해군이 직접 관여한 불사이고, 慈壽寺와 仁壽寺 兩寺의 불사 및 해인사 장경판전의 중수 불사는 광해군비인 章烈王妃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더욱이 이들 불사에 벽암 각성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어, 광해군과 부휴계 문도와의 지속적인 교유를 통한 불교계 지원의 일단을 알 수 있었다. 광해군의 재위 연간은 어둡고 문란한 시대라는 昏朝라고 매도되었지만, 전란 중에 세자로 책봉되면서 分朝 시기는 물론 재위 16년 동안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전후 문화 복구사업에 힘을 기울인 것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광해군의 불교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우호적이였으며 전후 복구지원 및 승려들과의 교유도 깊었다. 특히 조선후기 불교계를 주도한 浮休善修와 같은 禪僧과 그의 문도인 碧巖覺性․孤閑熙彦 등과 교유하면서 자신의 능침사찰인 封印寺에 사리를 봉안하고, 세자의 원찰인 淸溪寺에서 齋會를 시설하였다. 그리고 1622년 淸溪寺 齋會를 직접 설행하면서 그해 3월 『妙法蓮華經』을 開板하였고, 5월에는 광해군비인 章烈王妃가 慈壽寺와 仁壽寺 兩寺의 불사를 후원하였다. 이때 불상 11구와 불화 7점을 조성하였으며, 이 가운데 3구가 발견되었고 그중 1구가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불상이다. 이들 불상에는 3월 개판된 『법화경』과 <왕비유씨저고리>를 불복장에 넣었다. 또 7월의 해인사 藏經版殿 重修佛事에도 장열왕비의 후원 하에 왕실 비빈을 비롯한 상궁, 비구니 등의 대거 참여로 왕실의 후원은 지속되었다. 본고는 광해군 시대 佛事의 일환으로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하여 광해군 시대 왕실의 불사 후원과 불교계 지원 사례를 검토하였다. 아울러 1622년의 조성발원문을 중심으로 淸溪寺 齋會와 慈仁壽 兩寺의 불사에서 조성된 불상과 불화 사례를 조명하였고 이를 통해 왕실 불사의 맥락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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