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91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7 - 34 (2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전형적인 농촌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 노비는 양인농민과 더불어 생산의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 노비는 15~17세기에 전체 인구에서 3~4할을 차지하다가 18세기 이후 감소하기 시작하여 19세기에 이르러 극감하는 것으로 알려 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달리 현존하는 조선시대 호적대장에는 19세기에 노비 수가 도리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 글은 이 현상을 해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세기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읍치 외곽지역의 노비 수 증가는 유학호의 증가현상과 연동하여 증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존 연구를 통해 확인된다. 반면 읍치지역인 동상면에서는 유학층 뿐만 아니라 향리층, 품관층, 무임층 등 다양한 계층에 서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특히 19세기 중반 이후 이들이 소유한 노비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노비 수의 증가는 실제 노비의 증가라기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몇 가지 확인된다. 그것은 첫째 1843년 호적대장의 노비 기재 방식이 이전 식년과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전 식년과 달리 이 식년에는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노비가 30%을 넘어서고 있었다. 두 번째는 이 식년부터 연령을 정확히 기재하지 않고 간지만을 기재하고 있었다. 1843년을 기점으로 노비 수가 폭발적 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노비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것, 노비 연령 기재 방식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19세기 노비 수의 증가가 호적대장의 작성방법의 변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확한 연령을 기재한 자만을 현존하는 노비로 인정했을 때는 19세기 중반의 노비 수는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초반에 비해 극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7)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