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10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59 - 184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分封制를 토대로 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이질적인 환경 속에서 형성된 주나라 본연의 의례와 종묘 제도를, 계승의 단절과 경서들의 滅失 상태에서 漢人들이 명확히 고증해 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周代의 禮制 문화 속에서 꽃피운 孔子의 사상을 조금 더 섬세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당시의 예제 문화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념적인 선입견을 배제하여 보다 사실에 가깝게 논증하고자 하는 시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前漢代에 成書된 『禮記』와 『穀梁傳』 및 石渠閣 회의에서 도출된 종묘제도에 대한 논의와 後漢代 鄭玄의 관점 등을 통해, 漢代에 진행되었던 주나라의 廟數制 논의를 살펴보았다. 보편적인 종묘제도로 인식되어 왔던 ‘천자7묘・제후5묘’ 등과 같은 일정하게 규정된 묘수제는, 사실상 한대 이후에 다져진 것이다. 전한 초에 실시하기 시작했던 ‘지방의 郡國廟 제도’는 오히려 주나라 고유의 묘제 형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예학전문가였던 叔孫通의 건의에 의해 도성 외의 지역에 세웠던 漢高祖의 原廟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의도되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것은, 부분적인 分封制에서 완전한 郡縣制로의 체제 정착 기간 동안 일시적 방편으로 수용되었을 뿐이었다. 전한 후기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던 ‘도성 내에 건설하는 左昭・右穆의 천자7묘’ 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나라 때 실재했던 가장 이상적인 종묘제도로 추앙되었다. 戰國時代에 성서된 『荀子』의 「禮論」편에서 “천하를 소유한 자는 7대의 일을 직무로 삼으며[有天下者, 事七世.]”라고 말한 것은, 주나라의 묘수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천자가 본연의 업무로서 챙겨야 하는 同姓의 친족 범위를 설명한 것이다. 한대 이후의 그것은, 이전의 전통 예제 문화에 공자 이후의 유교 이념을 적극 수용한 결과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대에 논의된 예제 관련 기록들 자체를 주나라 고유의 예제였다고 확정하는 일은, 객관적인 시각에 의한 보다 면밀한 재고찰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