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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73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35 - 7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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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정인보와 백낙준, 백남운, 송진우와의 교유관계와 상호 인식 등을 통해 정인보 행적과 사상을 이해하는 바탕을 마련하는 동시에 정인보의 인식과 사상이 어떻게 현실화되고 사회화 되어 나타났는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연전의 동서화충의 학풍 속에서 정인보는 백낙준 및 백남운과의 교유관계를 가졌다. 백낙준은 서화론자들과 달리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백낙준이 실학 및 국학을 진흥시키는 생각과 행동을 한 것에는 정인보가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백낙준의 실심을 강조하는 실학에 대한 인식과 이해, 그리고 해방 후 한국 교육의 이념으로서 홍익인간을 제안하고 강조한 것은 정인보가 주장한 실학 이해 및 홍익인간 주장에 기반 한 것이었다. 정인보와 백남운은 비록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이념과 학문적 연구 방법은 달랐지만,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외래의 이념과 학문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우리 것으로 만들어 한다는 데에는 입장을 같이했다. 그를 위해 우리 역사가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독자적인 발전과정을 하였다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을 공유하였다. 이런 차원에서 정인보가 주도한 1930년대 중반 조선학운동에 백남운이 참가하기는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양자의 인식과 활동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또한 해방직후 한국 교육의 이념으로서 홍익인간을 채택하는데 있어서 백낙준과 정인보 등이 이를 적극 앞장섰던 것에 반해, 백남운은 극구 반대하였다. 송진우는 우리의 독자적인 사상적 문화적 전통과 역사를 확립하는 것이 민족운동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통해 민족주의세력 주도의 자립적 근대국가건설 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공산주의세력 주도의 국가건설운동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송진우는 정인보를 끌어들여 동아일보의 지면을 적극 제공하면서 그의 저작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정인보는 송진우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회 활동을 같이하였다. 그렇지만 송진우의 후원 하에 독자적인 한국 민족주의 사상을 정립하려 했던 정인보의 모색과 활동은 1945년 12월 송진우가 암살되면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중단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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