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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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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문서학회 古文書硏究 古文書硏究 제47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 - 23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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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나무 재질의 문서가 종이 재질의 문서로 변화하던 3세기부터 6세기까지 문서 재질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당시 公文書에 있어서 署名의 형식과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문서 재질이 나무에서 종이로 바뀜으로 해서 信標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나무 문서의 檢이나 封泥는 종이 문서의 署名이나 印章으로 바뀐 것이 그것이다. 署名과 같은 새로운 신표 방식은 기존 稱姓이나 不稱姓으로 표현되는 位階 형식과 결합되어 禮式에 따르는 署名의 형식이 정착되기에 이른다. 秦漢時代 木簡의 署는 엄밀한 의미에서 지금의 署名과 동일한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당시 문헌 기록상에 署를 署名으로 풀이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전하는 공문서 자료를 통해서도 일관하는 署名의 개념을 추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 문서에서 종이 문서로 전환되는 과도기를 거치면서 署는 名과 결합하여 신뢰의 증표 개념으로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姓을 쓰는 것과 姓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위계질서를 표현하는 姓名의 형식은 署와 결합하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署名도 禮式의 패턴화된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署名의 패턴은 唐宋時代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공문서 시스템을 설명하는 기본 개념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반면 押은 3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는 보편적으로 사용된 용어가 아니었다. 비슷한 의미로 畫諾과 같이 문서 본문과는 다른 필체의 결재 방식이 존재하였다. 畫諾은 결재권자의 승낙과 비준의 의미를 상징하는 부호였다. 당시의 화락은 서명과 크게 연관성이 없었는데, 宋代 이후에 署名과 결합하여 禮式에 기준한 姓-名-署-押의 복잡한 조합 방식으로 공문서에 정착되었다. 3세기부터 6세기까지 나무 문서에서 종이 문서로 변화하던 시기의 서명 형식은 문서 재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唐宋時代 律令에 의거한 공문서 시스템에서 확고하게 규정된 서명 방식은 이러한 문서 형식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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