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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각사상연구원 대각사상 대각사상 제13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139 - 185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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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완은 수원 용주사(龍珠寺)가 배출한 걸출한 독립운동가 가운데 한명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는 만해 한용운 스님과 연결하여 불교학교인 중앙학림(中央學林, 현 동국대학교 전신)의 청년승려들을 이끌고 직접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후 청년승려들을 통한 만세시위를 전국적으로 조직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신상완은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한 이후 임시정부와 연결하여 국내 불교계의 동지 획득과 독립자금을 모금하는데 노력하였다. 이에 국내에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배포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였고, 국제연맹(國際聯盟)에 제출하기 위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의 부당함과 한민족이 독립해야하는 정당성을 역사적으로 밝힌 자료집 발간에 참여하였다. 자료집에 실명을 직접 쓴 논설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금강산 승려 신상완’의 이름으로 일제의 불교탄압을 지적하는 글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는 신상완이 상해에서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각되었음을 뜻하며, 동시에 일제 사찰령(寺刹令)에 대한 가장 논리적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상완의 역할과 위상은 1919년 11월 15일 승려들의 독립선언서인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大韓佛敎聯合會 宣言書)>의 기초자로 추정하게 만든다. 특히 독립선언서 발표 다음날 신상완은 여운형·최근우와 더불어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동경을 다녀왔다. 두 달간 신상완은 여운형과 더불어 제국주의 일본의 중심에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한편 불교계의 단결과 독립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20년 1월 승려들로 구성된 군대, 즉 의용승군(義勇僧軍) 조직안을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승려들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펼치겠다는 원대한 꿈이다. 신상완은 이러한 승려들의 조직화를 위한 큰 뜻을 품고 국내에 들어와 독립운동 자금과 승려들의 근거지 마련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상해 임시정부의 강원도 특파원으로 철원 애국단(愛國團)의 독립운동을 지원, 고무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신상완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한 독립운동 역량 강화와 상해 임시정부를 위한 연락업무였다. 동시에 불교계에 처지에서 보면 외적의 침입에 맞섰던 역사적 전통을 지닌 승군(僧軍)의 조직을 위한 노력이었다. 이러한 승군의 조직화를 위한 불교계의 통일과 단결을 위한 활동을 하던 중 1920년 4월 일제에 체포되어 5년형을 받았다. 1923년 5월 출옥 이후 신상완의 사회적 활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독립운동선상에서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생활했으며, 불교계에서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채 은둔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불교계의 내부 분열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더불어 당대 불교계를 대표했던 스승 강대련의 친일적 행태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신상완은 3·1운동 전후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주도적인 활동을 펼쳤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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