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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한문고전학회 漢文古典硏究 漢文古典硏究 제16권 제1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35 - 5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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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世祖~燕山君 시기에 활동했던 洪貴達(1438~1504)의 교유시에 나타난 官人의 形象을 규명하는 데에 일차적인 목표를 둔다. 이 작업은 홍귀달 시의 含意의 일면을 밝히는 작업이지만, 이를 통해 15世紀 後半 시인들의 時代 認識과 志向의 일면을 살피는 작업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홍귀달은 世祖朝에 嶺南에서 진출한 士人으로, 함께 영남에 기반을 둔 金宗直 및 新進士類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김종직과 달리 출사 이후 순조롭게 입지를 확보해나갔으며, 徐居正이 맡고 있던 文衡을 이어받기도 했다. 신진사류와도 교유했지만 보다 이른 시기에 진출하여 京華社會에 적응과정을 거쳤던 선배 세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勳舊 對 士林으로 인식되어온 기존의 構圖에서 그는 개성적인 연구 대상으로 보이기 어려웠던 면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삶의 특성은 오히려 다른 면을 주목하게 한다. 1504년 죽음 이전까지 그는 순탄한 관직 생활을 하며 폭넓은 교유를 나누었고, 文衡을 맡을 정도로 당시 문사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점에서 교유를 바탕으로 한 교유시는 그의 시대 인식 및 지향만이 아니라, 당대 문사들의 그것에 대해서도 탐색할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포착할 수 있는 제재가 바로 교유시에 나타난 官人의 形象이다. 홍귀달의 교유시에 나타난 15世紀 後半 관인의 형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治世의 根幹으로서의 循吏型 官人이다. 그는 당대가 태평성세라는 인식 아래, 태평성세의 지속을 위해서는 백성의 삶의 문제에 절실하고 任地의 難題를 적절히 헤쳐 나가는 循吏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당대에 필요한 관인형의 하나로 循吏型 관인을 제시하였다. 둘째, 修養의 主體, 敎化의 담당자로서의 官人 形象이다. 이 무렵에는 新進士類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조정에 새로운 긴장감이 형성되었고, 『小學』, 『家禮』의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律身, 自己 檢束 등의 실천적 측면이 강조되었다. 그는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성장하며 수학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수양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敎化에 책임을 다하는 地方官의 像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관을 수양의 주체이자 교화의 담당자로 강조하는 내용이 김종직 관련 작품에 한정되어 나타난다는 점은 중요한 문제로 지적될 수 있을 듯하다. 말하자면 김종직 및 신진사류와 비교할 때, 홍귀달의 교유시에는 이 같은 면모가 그리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속성의 관인형은 당시 신진사류의 진출과 함께 변화를 겪어가던 관인사회에서 공감의 폭을 넓혀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太平烟月 속에 餘裕와 自適을 즐기는 閑人의 형상이다. 그가 주로 활동하던 성종 연간은 대체로 안정과 평온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교유를 바탕에 둔 많은 작품에는 이러한 시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와 관련된 관인의 形象은 여유롭고 自適한 생활을 즐기는 閑人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神仙과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이상에서 살펴 본 관인의 형상은 각각 당대 문사들이 느끼는 정치 현실에서의 필요, 새롭게 요구되는 이상적인 官人像에 대한 고민, 시대를 謳歌하는 餘裕와 自適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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