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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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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국악원논문집 제3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97 - 12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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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공연장의 등장은 한국공연예술사의 지형을 달라지게 했었던 것은 물론이고 당시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사회문화적 변화의 원천이었다. 그 이유는 그 설립과 운영 그리고 혁파의 전 과정이 대한제국의 제도-고종황제 어극40주년기념 칭경의식-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칭경의식이 지연․불발되면서 그 결과는 예상치 못한 부문, 즉 대중문화의 성장을 견인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 배경과 원인을 밝혀보았다. 먼저, 국가전례로서 대한제국의 칭경의식의 성격을 검토했고, 다음으로 칭경의식의 하나로 궁내부에 설치된 희대․협률사의 제도적 기반과 흥행의 목적 및 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실공연물이 협률사의 공연물이 되는 절차와 방법에 대해 서술했다. 대한제국의 어극40주년기념 칭경의식이란 전통적인 오례 체제 중 가례의식에 속했지만, 근대적 독립국으로서의 대한제국의 의식이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가례와 빈례가 교차되었고, 한편으로는 서양식 의전까지도 수용한, 신구의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의례였다. 칭경의식은 전통적인 가례의 칭경의의 양식을 취했지만 그 내용은 외교의식이었다. 이러한 의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희대․협률사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칭경의식은 실행되지 못했고, 그 준비 절차 중에 만들어진 희대․협률사만 남아서 흥행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협률사는 제도적 뒷받침을 받고 황실 공연물을 활용할 수 있었다. 협률사는 “여기-정재/광대-창극/연희패-연희”로 구성된 공연물을 흥행했다. 협률사 흥행물의 양식적 원천은 대한제국의 외교연 가운데 최고 귀빈을 위한 공연물의 구성양식과 같다. 궐 밖에 있었던 협률사는 대한제국이 외교연과 마찬가지로 사연의 절차를 거쳐 황실공연물을 공연할 수 있었다. 황실공연물이 민간에서 흥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었던 여러 계급의 도시인들이 동일한 취향을 갖는 대중으로 재구성되었다. 협률사를 뒷받침했던 제도는 협률사의 사회적․문화적 영향력을 강화시켰고, 합리적으로 통제되는 극장의 흥행술은 빠른 시간 안에 대중문화를 구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록 대한제국이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대한제국 황제와 정부는 근대 대중문화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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