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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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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62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23 - 145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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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발발 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좌우익 독립운동진영은 이를 독립전쟁의 절호의 기회로 여겨 한중공동항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중일전쟁 당시 한국독립운동세력이 정규군대를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한중 공동항전은 실전에 참가하는 것 보다는 첩보활동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김구와 주로 연대활동을 전개한 기관은 CC파이다. 김구는 중일전쟁 후 후방교란 작전을 수행할 적합한 인물을 찾았고, 그가 찾은 사람이 바로 조상연이다. 그는 1938년 천진으로 파견되어 이 지역의 일본군 정보를수집해 김구와 CC파에게 보내는 일을 하다가 일본에 피체되어 순국하고 말았다. 김원봉과 관계를 맺고 함께 천진, 상해 등 각 주요 도시에서 일본군 정보수집 활동을 전개한 기관은 삼민주의역행사이다. 이들은 적 정세 자료의 번역, 일본전쟁포로의 관리와 훈련, 일본군 내 한인에 대한 선동과 탈출, 일본군에 대한 심리작전 진행, 중국군대에 협조해 선전활동 및 유격전쟁 참가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중일전쟁 후 한중 간 공동항일투쟁은 한국독립운동사에 있어서, 그리고 중국 항전사에 있어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첫 번째는 실질적으로 1931년 일본의 만주침공을 시작으로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대부분의 관내지역이 부일, 친일화 되어 독립운동이 전개되지 못했다고 하는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두 번째는 윤봉길 의거 이후 중국 측으로부터 받았던 정신적, 물질적 지원이 결코 중국 측으로부터 받은 일방적 수혜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중국군 내부에 일본군 정보 수집을 담당할 만한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한인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세 번째는 중국항일전쟁사의 의미를 세계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같은 한중이 함께 활동했던 역사적 연대감은 일본의 급속한 우경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제재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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