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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日本學硏究 日本學硏究 제45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1 - 5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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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신정부는 막말 이래 최대의 외교적 현안이었던 조약개정을 위해 1883년에 본격적인 외빈접대시설 로쿠메이칸을 완공, ‘문명국 일본’의 자기증명의 장으로 삼았다. 그곳에서는 유럽인의 문명적 이미지에 맞춘 유럽산 무도회가 열렸다. 그러나 1887년, 조약개정 교섭의 실패로 화려한 ‘로쿠메이칸 시대’는 조기에 막을내리고, 이후의 로쿠메이칸 무도회는 구미문명의 표면적인 ‘원숭이 흉내’(조르주비고), 또는 경박부조한 ‘야단법석 소동’(고바야시 기요치카)으로 희화화되었다. 한편, 문학에서는 피에르 로티의 「에도의 무도회」(1889)의 등장인물을 시점화자로 설정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무도회」(1924)를 효시로, 미시마 유키오의 「로쿠메이칸」(1956), 야마다 후타로의 『에도의 무도회』(1983), 가제노 미치오의『로쿠메이칸 도촬』(2010) 등, 다이쇼기 이래, 로쿠메이칸 무도회를 다룬 작품들이 발표됐다. 로쿠메이칸 무도회의 희화적 이미지와 상호텍스트성을 지닌이들 ‘로쿠메이칸 문학’은 로쿠메이칸 무도회를 조소와 자조의 대상인 ‘빌려온 댄스파티’에서, 근대일본이라는 독자적인 변신의 드라마로 거듭나게 하였다. 이로써 로쿠메이칸 무도회는 유럽문명이라는 타자표상에서 근대일본이라는 자기표상으로 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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