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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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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현대영화연구 현대영화연구 제14권 제4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11 - 14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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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50년부터 1957년까지를 중심으로 북한에서 초창기 칼라영화 제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다룬다. 북한은 소련의 기술적 지도를 받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950년 5.1절>이라는 행사기록 영화를 김운몽 연출, 홍일성 촬영으로 제작했다. 이 작품은 북한 최초의 칼라영화로 기록된다. 이렇게 시작된 북한의 칼라영화 제작은 전쟁이 장기화되어 북한 내 영화제작 시설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중단되었다. 칼라영화의 제작 재개는 휴전 직후인 1955년 8.15해방 1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윤득춘 연출, 김인현, 한창해, 홍일성 촬영의 기록영화 <8.15 10주년>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후 1957년 리영준 연출로 <금강산>이 칼라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대규모의 기록영화 제작은 북한 영화계가 칼라영화 기술의 습득에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기록영화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예술영화도 칼라로 제작된다. 1956년 최승희의 무용극을 필름에 담은 정준채 연출, 오웅탁, 박경원 촬영의 <사도성의 이야기>가 그 시작이었다. <사도성의 이야기>의 성공적인 칼라기술 접목에 이어 1957년 김락섭 연출, 박병수 촬영으로 <심청전>과 조소합작영화로 제작된 <형제(동방의 아침)>가 천상인 연출, 고형규 촬영으로 완성되었다. 특히 조소합작영화인 <형제>는 북한문예계의 큰 관심을 받으며 만들어졌으나 정치적 스캔들로 비화되어 앞선 영화들과 달리 혹평을 받아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자본주의 영화계와 달리 사회주의 체제 하의 북한에서 칼라영화의 제작은 정치적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영화의 내적인 결함보다는 영화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평가가 달라진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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