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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행정사학회 한국행정사학지 한국행정사학지 제41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77 - 20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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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개항 이후 일제 강점기에 용산기지 형성에서의 ‘개발을 통한 수탈론’의 관점에서 조선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역할을 고찰하는데 있다. 원래 용산은 ‘용산팔경’이 전승돼 올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한국의 근현대화 과정에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용산기지는 일본의 식민지화에 따른 지배의 힘을 상징하며 한국의 경제, 문화, 사회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06년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었던 용산기지는 일본의 침략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군사기지라고 할 수 있다. 조선통감부는 1906년부터 1910년까지 각종 명분으로 한국의 국정을 장악하였으며 조선총독부 설치를 위한 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찬탈기구였다. 조선총독은 일왕에 ‘직예’(直隸)하며 제령권(制令權) 등 삼권(三權)을 장악하고 조선주차군사령관(또는 조선군사령관)을 통해 일본군에 출동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1910년대 식민지 한국에 있던 일본군의 가장 큰 변화는 1916년부터 2개의 상주 사단(師團, division)을 편성한 것이었다. 이것은 일본이 한국에서의 침략과 약탈을 강화하면서 대륙침략의 기반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특히 1931년 9월의 만주사변 이래 일본제국과 식민지는 준전시・전시체제로 되면서 용산의 변화는 완전한 군사도시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현재 용산기지는 서울시내에서 최대의 녹지대로 남아있지만 단순한 대지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용산기지 반환에 따른 향후의 대책에 있어서 관련 부처는 물론 시민들과 함께 논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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