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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진지리학회 경관과 지리 한국사진지리학회지 제28권 제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73 - 87 (1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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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풍수는 민간에서 이루어진 민속행위가 아니라 왕실과 관료집단에서 활용한 통치기제였다. 고려의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와 조선의 한양천도 그리고 육룡의 왕릉 성역화 과정에서 나타난 풍수적 활용은 왕조의 정통성을 마련해 주었다. 서울의 왕궁은 조선의 창업과 더불어 창건되었는데, 풍수지형에 맞추어 궁궐터를 선정하였다. 경복궁은 중심능선을 따라 아미산과 교태전・강녕전・근정전을 배치하여 축선을 통일하였고, 균형적인 공간을 배치하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 선조의 행궁이었던 덕수궁은 사대부의 저택을 왕이 임시로 머무르는 장소로 활용하였으므로궁궐지형을 갖추지 못한 것이 당연하였다. 광해군이 창건한 경희궁은 그가 중건했던 창덕궁의 풍수가 길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배척하였고, 정원군의 잠저에 왕기가 서렸다는 말에 그의 집을 빼앗아 경희궁을 지었다. 궁궐을 지을 수있는 풍수지형인지의 여부를 논하기 전에 정치적 판단으로 궁궐을 지은 것이다. 이러한 독단은 신하와 백성들의 민심이반을 초래하였고 결국 인조반정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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