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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6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59 - 39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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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澗隱 林台煥(1874-1929)의 생애를 개괄하고, 그의 시대 인식과 學的 지향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임태환의 자필 원고 󰡔睡語󰡕를 활용하였다. 임태환은 林谷 林眞怤의 9대손으로, 그의 가계와 혼맥은 南冥學派的 경향이 강하다. 그는 三嘉 大田에서 遺腹子로 태어나, 백형 林宗煥의 보살핌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인근에 있던 朴致馥·許愈·尹夏植 등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에게 배웠고, 郭鍾錫·尹冑夏의 영향을 받았다. 33세 때부터는 다수의 종족들이 세거하던 安義 葛溪로 이주하였는데, 이 때문에 교유 범위도 삼가·단성·합천·안의·거창 등지에 걸쳐 있었다. 또한 안의, 삼가 등지에서 강학 활동을 지속했는데, 특히 1919년 무렵 栗里書塾에서 20세 전후의 학생들에게 1년 남짓 四書와 󰡔詩經󰡕 등을 지도하였다. 임태환은 儒學的 전통이 있는 가계에서 성장하여 당대의 名儒를 사사하였으며, 학생들을 교육한 내용도 전통 학문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는 조선이 망할 무렵 태어나 기존의 유학적 질서가 통용되지 않는 일제강점기를 살았지만, 전통 학문을 고수하면서 유학이 부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강학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는 儒道의 扶持를 사명으로 여겼고, 유학의 핵심적 가치인 節義를 중시하였다. 특히 당시대의 郭鍾錫이 桐溪 鄭蘊(1569-1641)의 절의를 계승했다고 인식하였다. 이민족의 침입에 대항하여 목숨을 내걸었던 두 인물의 절의가 유학적 가치의 시대적 발현이라 여긴 것인데, 독립운동을 하던 族姪 林有棟의 절의를 높이 평가한 부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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