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진 (동방 한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63집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307 - 343 (3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유교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주장이 있고, 반면에 우리가 이룩한 국가 발전을 두고 유교 사상의 힘이 컸다는 ‘유교 자본주의론’도 있다. 유교 사상은 이미 흘러간 이데올로기가 되었지만, 아직 우리의 정신적 바탕의 큰 부분에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유교 신봉자인 유림의 의식 세계와 행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유교망국론’과 ‘유교 자본주의론’을 놓고 어느 쪽이 옳은지를 따져 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것은 역사의 평가에 맡기면 될 것이다. 다만, 그 의미의 반추를 통해 우리의 미래에 좋은 참고 자료를 얻을 수가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거기서 유림이 반성할 부분이 무엇인지, 유교 사상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3ㆍ1 운동 전후에 전개된 긴박한 현실 체험을 기록한 重齋 金榥의 「기미일기」를 중심으로 당시 영남 강우 지역 유림 인사들이 접촉한 사람들과의 언행을 살펴, 나라가 망한 상황에서 그들의 현실인식과 대응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이 「기미일기」를 중심으로 하여 연관된 기록의 내용에 스며있는 그들의 의식 세계를 분석하여, 여러 측면의 의문점을 해소하고, 새로운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강우 유림의 주류였던 俛門 학자들은 의병 봉기 등 물리적인 저항보다는 自靖을 통해 후일을 기약해야 한다는 생각에 줄곧 변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국난에는 나름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였고, 행동할 때는 목숨을 던지는 과감함을 보였다. 나라가 망한 현실에서 위기의식을 가졌고,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도 확고하였다. 그것은 3ㆍ1 운동에 뒤늦게나마 참여하고, 이어서 파리장서 의거 등 유림단 의거를 주도하는 등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3.1운동 초창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주도 측인 종교계의 의도적인 배제는 아니었지만, 적극적으로 동참을 요구하지 않았고, 유림도 자신들이 이단으로 간주해 온 종교세력과 선뜻 손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민족적 대사인 독립선언에 불참한 것은 분명한 실책이었다. 그러나 그 후, 전국적으로 확장된 독립 만세 운동과 파리장서 같은 유림단 의거에는 목숨을 걸어 매진하였고, 그것은 자주독립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행동이었다.
그런 중에도 근대화를 지향하는 서구식 개화를 불신하고, 유교적 왕도 정치에 대한 신념 또한 변함이 없었다. 그처럼 강우 유림의 봉건적 세계관은 오랜 전통의 유교문화가 가져다준 태생적 한계임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의 수구적 유교 가치 수호는 마땅히 전향적으로 고쳐야 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 사상이 근대 자본주의 경제발전에 상당한 바탕이 되었다는 주장에 비추어 보면, 강우 유림의 세계관과 현실 대응 태도가 긍정적이었든 부정적이었든 모두 격동의 국난 시대와 망국의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江右 儒林의 현실인식 세계 개괄
Ⅲ. 일제강점기 강우 유림의 현실대응 양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3-810-00132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