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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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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6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29 - 25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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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제2차 수신사 사행에 서기로 참석한 강위의 사행시집 「동유초」를 검토하고 그 속에서 강위의 활동과 그의 일본 인식을 살펴보려고 했다. 「동유초」에는 광인사(廣印社)에서 두 차례 간행된 『고환당수초』에 수록된 「동유초」, 서울대에 소장되어 있는 『고환당동유시초』에 수록된 「동유초」, 마지막은 증손자 감범식에 의해 필사된 「동유초」 3종이 있었다. 이중 서울대본이 강위의 친필 원본으로 광인사에서 간행될 당시 5수가 삭제되고 1수가 추가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간행 시에 제외된 시는 조선이 개화에 부정적이고 늦은 대응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시들이었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인해 정세가 급변한 뒤 발간된 시집에는 강위가 개화 정책에 소극적인 조선을 비판하거나 개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시들이 삭제되었던 것이다. 과거 강위의 개화사상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개화사상을 주장하는 설과 이를 부정하는 설이 있었다. 기존 광인사본에는 강위의 개화사상에 적극적이라고는 판단하기 어려웠으나 서울대본에서는 급진적인 개화사상을 보여주는 시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것은 강위의 개화사상에 대한 인식으로, 일본 사행 중에 개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다닌 것은 아니다. 강위는 1880년의 사행과 1882년의 일본 방문 때 흥아회 모임에 참석했고 이들에 대한 호응적인 시를 남겼다는 점에서 ‘아시아 연대론’에 동조한 개화기 지식인으로 논의되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그는 제2차 수신사 사행 당시 일행 내에서도 신문에 이름이 거론될 만큼 조선 문인으로 가장 주목을 받았고, 그를 지목하여 필담을 나누려던 일본 인사들도 많았던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일본 측의 강위를 대하는 대응 또한 그의 일본 및 개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에 일조했을 이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시에는 일본에 대해서는 호의적이고 개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실제로 일본인과의 교류 석상에서는 정치적 안건에 대해서는 담화를 피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소극적인 필담 태도는 김홍집이 미리 사행원들에게 일본인과의 교류를 허락하기 않았다는 점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강위가 일본 사행에서 기대한 것은 과거 통신사들의 문인 교류였기 때문에 문인 교류라는 이상적인 사행과 정세에 대한 필담이라는 현실적인 사행에서 그의 사행시와 사행 태도에 다중적인 면모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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