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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동명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66집
발행연도
2019.11
수록면
385 - 421 (37page)
DOI
10.18496/kjhr.2019.11.66.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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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제국주의(이하 일제) 지배 하 식민지 조선에서 이루어진 문화접변이 해방 후 한국에서 어떻게 해체되고 새롭게 일어났는지 벚꽃을 사례로 분석하였다. 구체적으로는 히라노 겐이치로(平野健一郎)가 「국제문화론」에서 제시한 「문화접변의 과정」을 채용해서 창경원 벚꽃놀이가 여의도 벚꽃축제로 접변해가는 과정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구평형은 창경원 벚꽃놀이이다. 1924년경부터 식민지 조선에 정착한 창경원 벚꽃놀이는 교통이 편리한 전통적인 장소에서 근대적인 박물관 · 동물원 · 식물원 등과 인공 설비를 갖춘 복합공간에서 펼쳐졌다. 이후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끝나고 해방 후 한국에서 대략 1970년대부터 부분적인 해체가 본격화되었다. 그 이유는 벚꽃이 일본의 상징이며 일제의 잔재이기 때문에 해방된 한국에서는 사라져야 하고, 조선시대의 전통궁궐인 창경궁을 독립국가의 문화재로서 복원해야 하며, 인구 급증에 따른 창경원의 이용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에 부분적인 해체를 막기 위해 미국 워싱턴 포토맥강변의 벚꽃축제가 서울 여의도 한강변에 전파, 제시되어 수용되었다. 1970년대 초에 심어진 벚나무는 1980년대에 들어서서 특히 1984년부터 창경원의 벚꽃놀이가 중단되면서 그를 대신해갔다. 이에 대해 독립국가의 권위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주변에 일제의 상징인 벚나무를 심어 권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노점상의 난립 등으로 인한 무질서에 대한 반발, 그리고 새로 개발되면서 미비된 대중교통에 대한 불만 등의 저항이 일었다.
외래문화측과 수용자측 문화 모두 저항을 겪으면서 변했다.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설과 다양한 종류의 봄꽃 식수는 벚꽃이 워싱턴 포토맥강변으로부터 수용된 외래문화요소라는 사실은 물론 일본의 상징이라는 벚꽃의 거부감마저 희박하게 했다. 또한 대중교통의 편의를 제공하고 차량을 통제하여 차 없는 거리를 만들고 노점상을 단속하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고 국제적인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그리고 국회의사당을 자유롭고 폭넓게 개방했다. 이로써 문화요소의 재해석 · 재구성이 일어나고 문화전체가 활력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여의도의 벚꽃축제는 개방된 현대적 공간에서 자유롭게 거닐며 벚꽃을 비롯한 봄꽃을 감상하고 다양한 공연과 행사를 즐기는 수백만이 참가하는 신평형을 이루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구평형 : 창경원 벚꽃놀이
3. 부분적인 해체의 개시 : 벚꽃에 대한 거부감과 창경궁 복원의 필요성 등
4. 외래문화요소의 전파 · 제시와 수용 : 미국 워싱턴 포토맥강변에서 서울 여의도의 벚꽃축제로
5. 저항 : 국회의 권위 훼손과 무질서에 대한 반발 등
6. 문화요소의 재해석, 문화의 재구성 : 왕벚나무 제주도 원산지설과 다양한 봄꽃 식수 등
7. 신평형 : 여의도 벚꽃축제
8.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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