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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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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나천수 (나주목향토문화연구회)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제82집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317 - 35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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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고부군수 조병갑의 농민수탈에 견디다 못한 고부 농민들이 임금께 지방 수령의 농민 수탈이라는 폐정(弊政)을 개혁해 달라고 농민들이 단체로 이른바 시위(示威)를 하였다. 전봉준이 그 시위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농민들의 추대에 의한 것이다. 전봉준은 전국 53개 고을을 점령하여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고, 농민 스스로 폐정 개혁의 추진을 도모하였다. 그러한 기세를 타고 농민군은 나주 읍성을 공격하였으나, 당시 나주목사 민종열의 계획적 방어로 나주는 점령되지 않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개인 사찬(私撰)의 문집에 기록된 것이 바로「금성정의록」과『난파유고』 이다. 당시는 농민군의 시위를 민란이라 하였지만, 1백여 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동학농민군의 의미를 민주화의 단초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금성정의록」에서 말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규명하고 싶었다. 본 논자는 동학농민군이 반란이 아닌 폐정개혁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시작되었고, 폐정 개혁의 주체는 바로 임금이므로, 임금이 임금답게 백성을 다스려 달라는 시위였기 때문에 농민군의 나주 침공도 의(義)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았다.
한편, 동학농민군과 나주인 모두 일본 군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황후를 시해(弑害)하고, 고종을 겁박하고, 이 땅에서 청일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반일운동으로 뜻을 같이 하였다는 점에서 동학농민군이나 나주인도 모두 의(義)와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있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Ⅱ. 이병수의「 금성정의록」 저술과 그 의의
Ⅲ. 동학농민군의 나주 공략과 나주 측의 수성(守城)이 지닌 의의
Ⅳ. 나주지역 일자별 농민군의 전투 유적지 탐방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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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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