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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차현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52호
발행연도
2020.3
수록면
133 - 178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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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장준하(1918-1975)의 생애를 고찰함과 함께 그의 자유민권 사상의 특징과 변화과정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장준하의 생애 연구를 통해 장준하에 영향을 주었던 당대 기독교적 풍토와 한국 신학사조의 변화 등을 조명할 수 있다. 또한 장준하의 자유민권 사상의 고찰을 통해 시대에 따라 변화한 장준하의 자유민권 사상에 반영된 그의 가치와 정신, 그리고 기독교와의 관계를 추적할 수 있다.
장준하의 기독교 신앙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을 전수받은 모태신앙적 성격을 가졌다. 장준하는 생애 초년기부터 기독교 문화에 노출되었고 일제강점기 조선의 기독교적 풍토의 변화에 따른 영향을 받았는데, 청소년기 민족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일본 도쿄신학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해방 후 한신대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이후 장준하는 도쿄신학대학교와 한신대학교의 동문들과 더불어 기독교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후 언론 및 정계활동을 하면서 한국 진보 기독교계인 에큐메니칼 운동진영과 함께 정권에 대항하여 반독재 운동을 하였다.
한편 장준하는 「사상계」를 창간한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자유와 민권의 확보의 중요성을 논했다.「사상계」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진영의 기독교인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기독교적 시각에서 논한 글들도 실렸고, 장준하는 1950년대부터 「사상계」를 통해 각 개인이 자유와 민권의 의식 갖기를 종용했다. 국민 개개인의 자유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으며, 집권자의 부정과 불의에 투쟁할 수 있는 권리가 국민에 있고 이러한 권리가 특권 및 관권과 대조되는 개념인 민권(民權)이라는 맥락이었다. 1960-70년대 장준하는 반독재 정치활동을 함과 동시에 자유와 민권을 찾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대항하여야 하고, 희생으로써 자유민권을 되찾을 수 있다며 그의 자유민권론에 전투적인 성격을 부가시켰다. 또한 애국과 민족애와 자유민권 투쟁의 결속관계를 부각시킴으로써, 1950년대 그가 개인의 존엄성을 언급한 것과는 모순적으로 자유민권 투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했다.
장준하는 자유민권을 사상을 드러낸 글들에 기독교적 서사와 구문, 또한 신학자 등 기독교인들이 남긴 어구를 메타포(metaphor)로서 다수인용하였다. 또한 기독교적 구문과 성경에서 반영되는 민주주의, 자유민권, 또한 투쟁의 정신을 수용하여 자유민권운동에 전력을 다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이를 독자들에게도 독려했다.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생 시절과 광복군 활동시 주일학교를 가르치는 목회활동을 하다가, 해방 후에는 교회에 주기적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보유한 채 기독교적 모임에 참석하며 신학교 동문들과 교류했다가 사망 직전 천주교인이었던 부인을 따라 천주교로 개종했다. 그의 자유민권 사상이 시기에 따라 변화했듯, 기독교인으로서의 그의 신앙도 변화를 거쳤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장준하의 생애와 기독교의 관련성
Ⅲ. 장준하의 자유 · 민권 사상의 특징
Ⅳ.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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