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혜진 (조선대학교)
저널정보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역사연구 제38호
발행연도
2020.5
수록면
165 - 198 (34page)
DOI
10.31552/jh.2020.5.38.16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해방 직후 전통음악이 국악으로 호명되고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서양음악 종사자들이 민족음악 논의를 제창하고 전통음악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국악으로 호명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이와 함께 전통음악계 내부에서 국악의 주체와 구성 장르를 둘러싸고 상호 경쟁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국악이라는 명칭이 해방 직후에 등장한 계기, 그리고 국악원과 아악부의 ‘국’에 대한 상이한 이해, 또 담론 공간에서의 국악 장르는 음악뿐만 아니라 창극과 무용 그리고 시조 등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또한 국악의 장르로 위치되었던 창극과 농악이 전통음악계 내부의 경쟁 과정에서 국악의 장르로부터 배제되면서, 정부 수립 직후 각각 국극과 민예로 호명 · 규정되었다. 해방 직후 국악의 한 장르로 위치되었던 시조와 국악의 범주에서 배제되었던 무악 역시 국악의 장르로부터 배제되었고, 이후 문학과 향토문화예술로 배치되었다.
그런데 실제 방송 프로그램이나 전통음악 관련 공연대회의 성격에 따라 국악은 기악과 성악의 한 장르로 위치되거나 반대로 민속악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리매김되었다. 때로는 극적이거나 언어적인 성격을 가진 줄타기와 만담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국악의 범주와 정체성이 유동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유동적인 국악은 당대 정치적 상황과 연동되어 국가화되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족 정통성 경쟁 속에서 우익적 성향을 가진 아악부를 1948년 12월에 국영화하고, 1950년 1월에 국립국악원으로 국가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해방 직후 인민 대중 중심의 전통음악 논의들은 국악 논의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궁중음악인 아악은 국악으로 등식화되었다. 그 결과 아악부와 아악이 중심이 되어 국악계와 국악의 정체성은 형성되었다. 이와 같이 국악과 국악계의 정체성은 해방 후 역사·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성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민족음악과 국악
Ⅱ. 국악의 담론적 경쟁
Ⅲ. 국악의 실제적 구성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1)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0-911-000844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