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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28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5 - 5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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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의 가람은 동서로 길게 많은 전각들이 놓여 있으며 크게 3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심으로 한 상로전(上爐殿)과 대광명전(大光明殿)을 축으로 중로전(中爐殿)이 위치하고, 영산전(靈山殿)이 있는 하로전(下爐殿)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장보각과 개산조당은 3개의 영역 가운데 중로전의 용화전 (龍華殿) 서쪽에 자리한 각 3칸의 작은 건물이다. 대문채와 본채가 한 세트로 구성되어 기존 영역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 있다. 앞의 솟을삼문은 개산조당(開山祖堂), 뒤의 건물은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고 부른다. 원래 담장이 둘러져 있었던 솟을삼문은 유교건축의 사당(祠堂) 형식으로 사찰에서는 특수한 건물 형태라는 점에서 그동안 왕실(王室)의 원당(願堂)으로 소개되어 오는 정도였다. 오늘날 해장보각은 내부에 개산조(開山祖)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진영(眞影)을 모신 일종의 조사당(祖師堂)이기에 대문에 걸린 개산조당의 현판이 현재 전각의 성격에 더욱 적합하다. 본 글에서는 해장보각이라는 지금의 현판을 달기까지 그 원형과 기능의 변형 과정에 대하여 통도사지(通度寺誌)에 실린 각종 기록자료 및 승려문집(僧侶文集)을 분석하여 살펴보았다. 즉 해장보각의 현판이 걸린 현재의 전각은 조선말기 왕실의 불교 의례를 담당하는 축성각(祝聖閣)이라는 명칭으로 존재하였다. 이후 1899년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인출된 해인사 대장경(大藏經)을 봉안하며 장경각(藏經閣) 현판을 걸었고, 다시 자장스님의 진영을 봉안하면서 개산조당(開山祖堂)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해장보각의 현판은 근대 이후 붙여진 명칭이다. 현재 통도사에 남아 있는 완문(完文)에는 조선후기 통도사가 각종 잡역과 부역 가운데 특히 지역(紙役)의 폐해와 각종 침탈을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왕실원당으로 지정되면 각종 면역 면세의 혜택이 주어지며 권력의 비호를 받고 관청은 물론 향교, 지방 유생들로부터 수탈까지 피할 수 있었다. 이에 통도사는 원당 지정에 매우 적극적이였던 것 같다. 1836년 순원왕후(純元王后)에 의하여 순조(純祖)의 극락왕생을 위한 수륙재(水陸齋)를 치루는 사찰로 지정되면서, 왕실원당으로서 본격적인 추천(追薦) 행위를 담당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후 순원왕후와 신정왕후(神貞王后)의 탄신재(誕辰齋)를 비롯한 고종의 황후인 민비(閔妃)의 법화도량 시주, 그리고 순종비인 순명비(純明妃)에 이르기까지 조선말 왕실 및 궁방(宮房)과 통도사간의 상호 유대를 유지하며 성수위축봉향(聖壽爲祝奉香) 사찰로서 기능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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