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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7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95 - 12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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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운동은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이다. 이 운동은 1919년 2월 19일부터 6월경까지 약 4개월 동안 전개되었다. 파리장서운동의 발단은 두 가지 중요한 계기적 사실에서 기인하였다. 하나는 3.1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에서 유림대표가 빠졌던 데 대한 유림층의 충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친일인사들이 「독립불원서」라는 글을 작성하여 일본에 전달하려 했던 음모에 대한 유림층의 분노 때문이었다. 「파리장서」는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학계의 통설상 ‘김황본’이 ‘곽종석본’의 저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자는 ‘곽종석본’은 ‘장석영본’을 저본으로 하였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전개 과정에서는 ‘곽종석본’이 서울에서 호서계열의 ‘김복한본’을 만나면서 ‘최종본’으로 수정되고, 이것이 상해로 가서는 ‘상해본(발송본)’으로 확정되어 파리평화회를 비롯한 각 유관기관 및 국내 향교에까지 발송되었다. 아쉽게도 상해본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파리장서운동은 김창숙을 비롯한 성주유림들이 주도하였다. 또한 성주는 전국 군단위에서 가장 많은 서명자를 배출하였다. 그것은 성주지역의 전통적인 유림의 학통과 이와 관련된 인맥과 문중 인사들이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장서운동은 유림의 3.1운동이었다. 3.1만세운동이 일본을 대상으로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라면, 파리장서운동은 세계열강을 대상으로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는 성주유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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