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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77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53 - 38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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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문화대혁명 이후부터 1989년 천안문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중국 지식인들과 중공권력 사이의 길항관계를 살펴보고, 그것이 천안문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살펴본 것이다. 1978년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전회를 기점으로 덩샤오핑이 권력을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덩샤오핑은 마오쩌뚱과 문화대혁명의 그늘을 벗어나야 했고, 이러한 논리적 근거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지식인들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하지만 덩샤오핑정권은 지식인들에게 일정한 공간만 제공할 뿐 결코 그들을 완전히 방기하지 않았다. 지식인들의 요구와 희망은 덩샤오핑정권의 기미(羈縻)를 벗어나는 것이었고 긴장관계를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시기 중공당의 권력과 지식인들에 대하여 세 차례의 ‘반정신오염’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억압하였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스스로 정치·사회적으로 모범이 되고 앞서서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80년대 중후반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열’에 힘입어 더욱 강화되었다. TV 프로그램 「河殤」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대학가에서는 팡리즈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들의 강연이 ‘쌀롱’문화로 나타났다. 이러한 영향으로 대학가에서 민주와 자유의 그리고 개혁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었고, 갑작스런 후야오방의 죽음으로 그들의 관심이 폭발한 것이 천안문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중공당이 지식인들을 탄압하거나 억압한 것은 지식인들의 독립화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지식인들이 주도적으로 정치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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