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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제33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43 - 175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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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의 사찰계를 통해 절의 보사활동과 신앙활동의 양상을 살펴보고 계가 지니는 위상을 가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옥천사에서는 1744년의 갑계를 시작으로 1816년의 불유계, 1820년의 지계, 1862년의 지장계, 1867년의 인경계, 1894년의 칠성계, 1906년의 장등계 등 17개 이상의 다양한 사찰계가 활동하였다. 조선시대 어려웠던 현실에서 많은 사찰계가 활동하면서 절의 재정을 지원하였고, 신앙심을 결속하는 소중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관음계는 1970년까지 존속하면서 사찰계가 역사 속의 화석이 아니라 최근까지도 살아 숨쉬는 신앙활동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옥천사의 사찰계 17건을 보사활동과 신앙활동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는데 보사활동으로서 시왕도 조성, 향로 봉안, 등촉 시주, 종이 생산, 칠성과 신중 봉양, 전답 시주 등에 이르는 다양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앙활동으로서 만일계에서는 매일 네 번씩 아미타불을 염송하는 등의 염불신앙을 고취하였다. 한 사찰에서 다양한 계가 성행하였다는 것은 사실 사찰의 재정이 어려웠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경제적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계를 결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 실례에서 보면 사실은 그 반대이다. 즉 계가 번성한 사찰은 그만큼 부찰(富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옥천사는 사찰계를 기반으로 불교전문강원을 운영하였고, 서울은 물론 일본까지 유학생을 보내는 등 인재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후 부산대학교의 설립기금을 기증하는 등 옥천사의 사회·교육사업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사찰계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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