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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문학회 국문학연구 국문학연구 제4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99 - 23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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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란(戊申亂)은 18세기 정치사에 있어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영조가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국왕의 정통성에 대한 의심이라는 요소를 내포한 위험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국왕은 실제 사건의 규모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신을 녹훈하였고, 공식적인 이해의 틀을 담은 『감란록』(1729)과 『천의소감』(1755)을 간행했다. 국왕이 제시한 사건 이해에 대해 여러 방향의 반론이 있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이후 조선의 망국 이전까지는 『감란록』 등에 대한 전면적인 반론을 담은 문헌은 간행되지 않았다. 대신에 정치집단 혹은 가문이나 지역의 관점에서 나름의 의도를 갖고 『감란록』을 보완하는 문헌들이 나타났는데, 『남정일록』, 『무신창의록』, 『호남절의록』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문헌은 국가에서 주도한 공식적인 기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적으로 공인받지는 못했으며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의 공적을 강조 또는 과장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또 때로는 사실 여부가 의심스러운 진술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반론이라면 소극적인 반론인 셈이다. 조선 왕조가 끝나고 붕당의 의미가 약화된 시점에 이르면, 무신란은 허구화의 대상이 된다. 힘센 장사이자 큰 전공을 세운 장수로 알려진 공신 이만유의 행적을 다룬 전기를 편찬한다고 내세운 『사상당실록문집』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문헌에서는 『남정일록』과 같은 기존의 기록에서 각종 전공의 주체를 ‘이만유’로 바꾸는 등의 전통적인 방식을 활용하면서도 때로는 야담이나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이에 의하면 이만유는 어릴 때 천재성을 보이고 자라서는 이인(異人)을 만나 새로운 능력을 얻었으며 낮은 신분임에도 국왕의 예우를 받으며 출정하고 제갈량 같은 지략을 발휘하여 초인적인 공을 세우는 인물이 된다. 이 문헌이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남은 것은 이러한 허구화가 아직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용인되기 어려웠을 허구화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헌이 많이 산출되지는 못했는데, 이는 무신란이 국왕이 없어진 시대의 새로운 관심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단군이나 동명왕,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장희빈이나 사도세자 등이 자주 문학의 소재가 되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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