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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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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사이間SAI 사이間SAI 제2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411 - 44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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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린위탕이 1968년에 직접 방한하면서 세계대학총장회의와 시민회관에서 가진 연설을 한국의 역사적 현장 맥락과 연결 지어 살펴보았다. 린위탕은 청중의 상이한 성격에 따라 세계대학총장회의에서는 ‘동서 융합’의 기반 위에 동양사상의 중요성을 거론했고,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는 동양(중국)의 문화전통을 찬양하는 대신에 그 약점을 지적하고 동양 후진국이 나아가야 할 방안을 제시하며 가난에서 스스로 기회를 찾아 “빨리 빨리 빨리” 근대화를 실현할 것을 호소했다. 이처럼 “동양사상+근대화”라는 ‘맞춤형’ 연설은 당시 “조국의 근대화”, “민족중흥의 길”을 향해 한창 전력질주하고 있었던 박정희 정권에게는 매우 “만족스러운” 발언이었다. 그러나 세계대학총장회의에서 여전히 ‘동서의 교량’, ‘동양의 지혜’와 같은 익숙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린위탕이 정작 한국의 일반대중 앞에서는 뜻밖에도 근대화를 채찍질하기만 한 것은 듣는 이들에게 혼선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린위탕이 강조한 중국ㆍ동양의 전통사상과 근대화의 배후 맥락과 내포가 박정희 체제의 그것과 질적으로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강력한 공세로 인해 대중에게는 양자가 결국은 같은 목소리로 받아들여졌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그 실제 강연 내용이 어떠했든 간에 린위탕은 그가 기왕에 향유해 왔던 세계적인 명망과 커다란 아우라로 인해 한국 청중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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