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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6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09 - 13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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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祖反正(1623)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남명학파는 戊申亂(1728) 이후 강우지역에 대한 경계와 불신이 짙어지면서 더욱 위축되더니, 끝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야 했다. 눌암 박지서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남명학의 쇠퇴가 150년 이상 지속되고 나아질 기미조차 없던 시기였다. 눌암은 가계·학문·지역적 연원으로 보아 남명학적 성향이 다분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지만, 정치적으로 배제된 지역의 在地士族으로서 문중을 살리기 위해서는 현실적 대세를 비켜갈 수 없었다. 이에 진주지역에 세거한 눌암의 문중도 증조부 때부터 南人化 성향을 드러냈고, 눌암에 이르러 더욱 폭넓은 교유를 통한 남인화가 이루어졌다. 그에게서 보이는 退溪 중심의 治學 방법이나 문학작품에서 남명학 관련 언급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점 등이 이러한 문중적 성향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눌암이 강우지역 남명학파적 성향을 버리고 남인으로서의 특성만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가계·학문·지역적 여건에 의해 계승된 남명학파적 성향 위에 남인화 성향이 보태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눌암이 평생 이룩한 수많은 지적활동은 강우지역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강우지식인의 오랜 염원인 南冥의 文廟從祀 請願을 주도하였고, 침체된 진주지역의 鄕學風 쇄신을 위해 향교와 서원 등의 교육시설 중건에 앞장섰으며, 남명학파의 시련과 함께 역사에 묻혀버린 지역 선현의 삶을 찾아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들이 이를 증빙하고 있다. 적어도 그의 생애에 드러난 활동으로 평가한다면, 눌암은 남명학파적 성향을 지닌 江右學者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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