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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사)한국문화유산협회 야외고고학 야외고고학 제37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3 - 6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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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 평정후 원나라는 군사를 주둔시키면서 탐라를 군사기지로 삼고 1세기 동안 직할령으로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다양한 계층의 원나라 주민들이 제주에이주하여 취락을 형성하고 생활하게 된다. 탐라시대 후기의 제주는 원도심을 중심으로 도심취락이 형성되고 동북부의 교역과 서북부의 물류생산 및 유통을 위한 취락이 자리잡게 된다. 반면 서남부와 동남부지역은 중심취락이 조성되지 못한다. 고려시대 역시 탐라시대 후기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서남부지역은 유물산포지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원 간섭기 이후 원나라 이주민들의 취락이 이곳에 집중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충렬왕 26년 서남부지역에 속현이 설치된 사실은 이주민들의 마을이 크게 성장하였음을 의미하는 증거이다. 충렬왕 2년 수산평에 말을 방목하면서 국립목마장이 운영되기 시작하는데 당시 양마와 관련된 목호와 그 가족구성원들이 대거 제주에 이주하게 된다. 이들은 말을 키우고원나라와의 교역을 위해 서남부지역의 포구를 활용하였고 근처에 취락을 형성하여 생활하게 된다. 강정동 대궐터는 원나라 이주민들의 거점취락으로 상정되며 주변에 분포하는 법화사지, 왕자묘, 왕자터 등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원명교체기에 북원이쇠퇴하면서 고려정부는 명과의 관계개선에 나서게 된다. 이에 따라 제주에 거주했던 목호세력은 반란을 일으켰지만 최영장군의 토벌군에 의해 평정된다. 목호세력이 소멸되면서 기존에 탐라에 거주하던 원의 이주민들은 재지화 과정을 거쳐 제주인으로 동화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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