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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창겸 (김천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9호
발행연도
2020.8
수록면
281 - 30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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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구자들은 개선사석등기의 ‘大娘主’를 큰딸(진성여왕)로 보고 있지만, 필자는 진성여왕이 아니라 경문왕의 次妃라고 주장한다.
중국, 조선 중기, 일본 고대에는 나이가 많은, 혼인한 여인, 君主의 어머니를 大娘이라 불렀다. 신라시대 娘은 성년 여성을 비롯해 나이가 많고 혼인하여 남편이 있는 여인과 어머니였다. 따라서 신라시대 사용된 대낭은 낭보다도 더 우위적인 신분이나, 더 많은 나이의 성인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개선사석등기의 대낭주는 어린 여자 아이가 아니라 이미 성년인 왕실 여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868년(경문왕 8) 석등 건립시 진성여왕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미 태어났고 혹 건립의 발원자로 참여하였다면, 명문 작성시인 891년(진성여왕 5) 당시 그녀는 재위중인 왕이었기에 今上이나 國王이라 불려야 했다. 아니면 즉위전 호칭인 北宮長公主라고 표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 것에서 짐작하건대 석등의 건립시나 명문 작성시에 대낭이라 불린 왕실여성은 진성여왕이 아니다.
결국 891년 석등기를 작성하면서 진성여왕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景文大王, 그의 正妃를 文懿皇后, 次妃를 大娘이라 지칭한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大娘의 어의
Ⅲ. 개선사석등기 大娘主의 실체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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