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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승훈 (한국예술종합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9권 제2호
발행연도
2020.9
수록면
63 - 97 (35page)
DOI
10.35161/rkapt.2020.09.19.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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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동아시아에는 전통적인 중화질서의 고수 및 해체를 둘러싼 청국과 일본의 세력전이뿐만 아니라 영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패권적 지도력과 이에 도전하는 동아시아 국가의 세력전이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이 글에서는 영국이 동아시아에서 독점적인 지도력을 상실하는 단초로서 청일전쟁에 주목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영국이 외교적 간섭 정책을 통해서 청국과 일본의 갈등을 조정하고 조선에서 전쟁을 막고자 했던 1894년 청일전쟁 직전 상황을 살펴보았다.
청일전쟁 직전, 영국은 조선의 개혁을 통해서 동학으로 초래된 조선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구상을 하였다. 그런데 동학 봉기를 빌미로 청국과 일본이 조선에 파병을 단행하자, 영국은 외교적 중재를 통해서 청국과 일본의 철병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특히 철병을 거부하는 일본을 상대로 영국은 러시아가 조선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일본의 전쟁 개시를 방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과 청국이 동학 봉기로 촉발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히려 러시아의 개입을 부추긴다고 주장하면서, 영국의 외교적 중재를 거부하였다.
청일전쟁 발발 가능성이 고조되자 영국은 독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와 함께 공동으로 외교적 중재를 실시하였다. 조선 주재 영국과 미국외교관들도 청일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조선 정부의 거중조정을 지원하였다. 청일 군대의 철병이라는 관점에서 영국과 조선의 지향점은 일치해 보였다. 하지만 영국과 조선이 추구한 궁극적인 지향점은 달랐다. 조선은 거중조정을 통해서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자 했다. 반면에 영국은 현상 유지를 통해서 동아시아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영국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대안은 청국과 일본에 의한 “조선 공동 점령”이었다. 영국은 현상유지를 통해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의 독립보다는 청일에 의한 “조선 공동 점령”을 구상했던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영국의 조선 문제 단독 간섭
Ⅲ. 영국의 외교적 공동 간섭 추진과 실패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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