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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선희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62집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175 - 206 (32page)
DOI
10.17857/hw.2022.12.6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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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시기 유럽 열강들은 군사적 갈등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희망하며 동아시아에서의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하였다. 독일은 동아시아의 정세를 관망하며 소극적·중립적 입장을 고수하였다. 독일은 일본과의 우호적인 관계에서 일본에게 적절한 외교적 조언을 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해관계에서 빈손으로 물러나는 것만은 경계하였다.
청·일 간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고 내용이 공개되자 러시아는 일본의 랴오둥 반도 할양을 만주에서의 자국의 세력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러시아는 독일·프랑스와 함께 일본에게 랴오둥 반도의 반환을 요구하는 외교문서를 전달하였다. 이것이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이었다.
독일은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동조함으로써 유럽에서 러시아와의 긴장완화를 기대하였다. 러시아와 프랑스는 랴오둥 반도 반환에 일조한 역할을 방편 삼아 청국에게 각종 반대급부를 확보하였다. 독일은 청국에게 동아시아에서의 해군 함대기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영토 할양을 요구하였다. 청국은 유럽 열강들이 독일의 선례를 따라 청국의 영토를 요구할 것을 우려하여 독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독일은 1897년 겨울 산둥성에서 일어난 독일 선교사 살해 사건을 계기로 산둥성의 자오저우만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청국과의 협상을 통해 독일은 자오저우만을 조차하여 마침내 숙원사업인 해군 함대기지 구축을 위한 장소를 확보하였다.
유럽 열강들은 독일의 선례를 따라 청국에게 영토 할양을 요구하면서 청국의 영토 분할은 가속화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Ⅱ. 독일의 삼국간섭 참여 배경
Ⅲ. 독일의 자오저우만 조차와 그 결과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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