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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웅열 (국립고궁박물관)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45집
발행연도
2021.4
수록면
6 - 47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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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나 관아에 게판된 어제·어필 현판의 첫 사례는 숙종 때였다. 명종 때 소수서원에 어필이 사액된 이후, 서원에서 어필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여 선조 대 이후로도 서원에 어필로 사액된 경우가 간간이 이어졌다. 현종 때부터 석판본·목판본 『열성어필』이 간행되어 반사되었고, 묘소 표석 글씨를 어필로 쓴 사례가 이어지면서 어필이 널리 알려지고 확대되었다. 여기에 숙종은 즉위 후 몇 차례 환국을 단행하면서 점차 정국을 주도해가며, 1691년(숙종 17) 종신들을 불러 宣醞을 하사하며 내린 어제시가 종친부에, 붕당을 경계하며 지은 ‘戒朋黨詩’가 승정원에 처음 게판되었다. 1692년(숙종 18) 동관왕묘에 숙종의 어필시가, 1693년(숙종 19) 효종의 잠저인 하어의궁에 숙종 어필 2점이 게판되었다. 이후 숙종은 궁궐과 관아 건물을 중수하면서 자신의 어제·어필을 게판하였다. 아울러 숙종 대 후반 영조 대 중반에 선조와 인조의 어필을 게판하였다. 어제·어필이 걸린 궁궐과 관아의 모습은 숙종 대 이후에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숙종의 어제·어필 현판 중 어필 10점이 모두 양각이었고 그 중 9점이 금자여서, 어필은 양각에 금자로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어제 9점 중 음각이 6점, 양각이 3점이어서 어제는 양각보다는 음각이 주를 이루었다. 음각 어제 중 4점이 금자고, 2점이 청자였고, 양각 어제는 분질에 흑자여서 어제 역시 금자가 다수를 차지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숙종 대 이전 어필 게판
Ⅲ. 숙종의 어제·어필 현판 게판과 형태
Ⅳ. 선조와 인조의 어필 현판 게판과 형태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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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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