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덕재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8輯
발행연도
2021.4
수록면
5 - 48 (4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고는 889년 농민봉기의 원인과 이에 대한 신라 핵심 지배층의 인식, 신라 통치체제의 와해와 궁예·견훤의 세력 확장에 따른 신라 통치기반의 退縮 등에 대해 살핀 것이다. 887년 진성여왕의 즉위 이후에 그녀의 失政으로 말미암아 농민들의 倒産과 流離가 급증하였고, 여기다가 흉년과 기근까지 겹치면서 농민들의 경제생활이 극도로 궁핍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성여왕이 889년(진성여왕 3)에 지방에 使者를 파견하여 貢賦의 납부를 독촉하자, 이에 반발하여 농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도적이 되어 봉기하였다. 당시 신라의 지배층은 889년 이후의 신라 상황을 劫灰 또는 나쁜 것 중에서 가장 나쁜 것, 즉 최악의 상태를 이르는 惡中惡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도적들이 횡행하여 커다란 혼란에 빠진 상황을 마치 전쟁이 일어나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것에 비유하였다. 892년에 신라는 武州地域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고, 893년 후반기에 尙州와 熊州, 漢州에 주둔하던 官軍을 동원하여 도적의 무리나 반란세력을 진압하는 시스템이 와해되었다. 896년 무렵에 신라 정부는 良州와 康州 北部에 위치한 郡縣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나아가 신라 왕경을 방어하는 군단의 상당수가 허설화되기에 이르렀다. 910년대에 후고구려와 후백제가 영남 이외의 지역을 나누어 영역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후고구려가 상주 이북의 경북 내륙지역을, 후백제가 구미시 선산읍과 그 인근지역을 차지하였다. 후고구려와 후백제의 영역으로 편입되지 않은 영남지역 가운데 왕경 주변의 일부 지역만이 신라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성주·장군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호족이 자체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농민봉기의 원인과 신라인의 인식
Ⅲ. 890년대 지방통치체계의 붕괴
Ⅳ. 궁예·견훤의 세력 확장과 신라 통치기반의 退縮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