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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수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저널정보
경남연구원 경남학연구 경남학연구 창간호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3 - 3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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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경남지역의 유학은 구체적으로 언급할만한 내용이 없다. 다만, 최치원이 경남 지역에서 남긴 흔적들이 여러 곳에 남아있어 경남과 관련한 유학자의 시초로 보고 있다. 고려 말 주희의 성리학이 수입되어 새로운 학문적 분위기를 만들면서 경남의 인물들도 유학사에 등장한다.
조선은 개국과 더불어 성리학을 국교로 받아들였는데, 그 전개 양상은 두 가지 방향이었다. 하나는 관학파 유학으로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하면서 국가를 경영하는 방법을 중시하였고, 다른 하나는 사림파 유학으로서 절의를 숭상하고 유교적 예법과 질서를 향촌에 보급하는 일에 힘썼다.
경남의 유학은 지역적으로 양분된 현상을 가지고 전개되었다. 진양을 중심으로 하는 서부 경남지역에서는 조선의 건국에 동참한 호족들의 관학이 주류를 이루었고, 낙동강 연안지역에서는 절의를 지키기 위해 낙향한 재지사족들의 도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사림파의 인물들은 2~3세대가 지난 후부터 다시 과거시험을 통하여 벼슬에 진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관학파와의 대립으로 약 50년간에 걸친 권력다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결국은 사림파가 권력을 쟁취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명 조식이라는 특출한 인물이 출현한다. 그는 전형적인 사림파의 인물로서 어린 시절부터 서울생활을 하면서 많은 인재들을 사귀었고, 30세 이후에는 낙동강 연안인 김해에서 18년간 살면서 그 지역 사림파 학문의 전통을 흡수하게 된다. 그리고 48세 이후에는 고향인 합천으로 돌아와 서부경남의 벗을 사귀고 제자를 받아들이면서 관학파 유학의 전통과 연결된다. 그리하여 그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구성하게 되었는데, 바로 경과 의를 중심으로 "출처의리"를 명백히 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하여, 그는 경남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학문적 집단인 남명학파를 탄생시키고, 이후 경남 유학은 남명학의 시대적 전개라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남명학은 인조반정과 무신란을 겪으면서 몰락의 길을 가게 되고, 경남 유학은 쇠퇴기를 맞이한다. 개화기를 전후하여 그 동안의 침체를 벗어나 경남 유학은 폭발적으로 부흥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유림독립운동을 주도하였고, 기업 활동을 통한 국가부흥과 독립자금조달에 앞장섰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가의 민주화와 산업화를 선도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남명사상은 경남정신의 맥이 되었고, 그것은 비판과 저항 그리고 구국의 에너지로서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경남 유교의 형성과 시대적 구분
Ⅱ. 성리학의 수용과 사림파의 형성
Ⅲ. 사림파와 관학파의 통합으로서의 남명학
Ⅳ. 남명학파의 형성과 정체
Ⅴ. 개화기 전후 남명사상의 부흥
Ⅵ. 저항과 구국의 경남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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