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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영철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02호
발행연도
2021.6
수록면
309 - 348 (40page)
DOI
10.37331/JKAH.2021.06.1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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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45년 주필산 전투에서 확인되는 고구려군과 당군의 병력 규모 및 부대편성과 전투지의 위치, 양군의 전술이 어떠하였는지 고찰한 것이다.
먼저 주필산 전투에서 투입된 당군의 규모가 16~30만이라는 견해는 재고되어야 하며, 기존 사료에서 보이는 3만의 규모가 옳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양홍례 부대는 독립 부대가 아닌 장손무기 부대에 편성된 예하 부대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세적 부대는 正兵, 장손무기 부대는 奇兵 목적을 띄고 있기 때문에 당군은 각기 상황에 따라 부대를 편성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주필산 전투에서 飛騎 부대가 포착되는데, 이들은 당 황제를 호위를 하는 北衙禁軍이며, 당 태종 부대에는 다수가 이들로 구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고구려군은 15만 명이었지만, 실제로 투입된 병력은 다수의 騎兵으로 구성된 약 5~7만 명으로 파악된다.
안시성의 위치는 당군이 안시성에 土山을 쌓았다는 사실과 그 동남 일대가 고구려 대군이 원활하게 진격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여 비정하였다. 그리고 안시성의 후보로 거론 되고 있는 海龍川山城과 英城子山城의 지형을 살펴본 결과, 안시성은 英城子山城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안시성 동남 8里 일대에 전개된 주필산 전투지의 위치는 사료에 나타난 여러 단서를 통해 英城子山城 동남 3㎞에 위치한 北鐵鑛業 유한회사 일대로 비정하였다.
당 태종이 주필산 전투에서 구사한 전술은 유인·기습 전술이었다. 당 태종은 돌궐 騎兵 1천으로 멀리서 온 고구려군을 유인하고, 이세적 부대를 미끼로 삼아 고구려군과 대적게 한 다음, 장손무기와 당 태종 부대가 그 측면과 후방을 공격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주필산 전투에서 연개소문의 전술 의지도 엿보인다. 연개소문은 개전 초기에 이세적의 요동도행군만 보고 직접 요동대평원에서 당군을 막고자 했으나 추가로 당 태종의 六軍과 해상에서 장량의 평양도행군이 포착되면서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그리고 고구려는 전통적인 청야수성전술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요동 일대의 여러 주요 성들이 연속해서 함락당하자, 연개소문은 전략을 다시 수정하여 평지·타격 전술로 15만 대군을 급파해 당 본대를 제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 태종의 노련한 실력과 젊은 장수인 고연수의 실전 경험 부족으로 인해 전투는 고구려군의 패배로 종결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구려군과 당군의 병력 규모와 부대 편성
Ⅲ. 주필산 전투지의 위치와 양군의 전술 운용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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