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혜영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42호
발행연도
2021.6
수록면
163 - 203 (41page)
DOI
10.31218/TRKH.2021.6.142.16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제1공화국기 장면 세력의 형성 과정과 활동을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다. 장면 세력은 제2공화국의 정권 담당층이었고, 1950년대 후반에는 자유당, 민주당 구파와 함께 제도권 정치를 이끌었다. 장면 세력은 이승만 독재에 대항하는 ‘反이승만 연합전선’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여기에 참여한 장면 측근 그룹과 의회내 非민국당계 야당 세력이 바로 장면 세력의 주축이었다. 이들은 2대 국회 때 장면 대통령 추대 공작을 통해 처음 연결되었고, ‘사사오입’ 개헌 후 야당통합운동에 참여하면서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했다. 장면 세력을 묶어주는 것은 지도자로서 장면의 존재와 민국당 계열(민주당 구파)에 대한 집단적 구별의식이었다.
야당통합운동의 결과 탄생한 민주당 안에서 ‘신파’로 정립한 장면 세력은 1950년대 후반 밖으로는 반독재투쟁, 안으로는 구파와의 당권 경쟁을 벌이며 활발한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의 활동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장면 부통령의 존재였다. 특히 장면이 보유한 ‘대통령 계승권’의 수호는 이들의 정치활동의 핵심이었고, 이 과정에서 장면 세력의 기본 특징인 비타협 강경노선이 확립되었다. 장면 세력은 개헌을 통해 부통령의 대통령 계승권을 삭제하려는 자유당의 기도를 철저히 봉쇄했다. 또한 자유당과 민주당 구파와의 접촉을 극도로 경계하고,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 채 당을 강력하고 선명한 대여투쟁의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 결과 1950년대 후반 장면 세력의 활동은 유연성이 결여되었고 다소 소극적이며 단조로웠다. 하지만 이들의 비타협 강경노선은 정권의 폭주 속에서 반독재투쟁 전선을 지켜내는 중요한 보루였으며, 4월항쟁 후 집권의 기반이 되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反이승만 연합전선의 등장과 장면 세력의 형성
Ⅱ. 1950년대 후반 장면 세력의 노선과 활동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