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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민주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42號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177 - 201 (25page)
DOI
10.14769/jkaahe.2021.08.4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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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후반 고려 왕실과 조정에서는 원의 문화가 수용되기 시작하였고, 14세기에 들어서는 여러 계층의 고려인이 원의 문물에 직접 접촉하며 동시기 원의 문화가 고려 사회 전반에 유입되었다. 13세기 말~14세기 초 봉황문 상감청자는 고려 문화에 미친 원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규명해볼 수 있는 예로서 외부 요소가 내재화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원대 봉황 도상과 문양 유형은 고려와 원 양국 간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고려에 전달되었다. 원대 봉황문에는 송대와 금대 봉황 도상이 절충된 형태인 당초형 꼬리 도상과 물결형 꼬리 도상이 활용되었다. 나아가 원대에는 위 도상을 사용한 다양한 봉황문 유형이 확인된다. 일월용봉문·五爪二角 용봉문·난봉문은 『원전장』에 실린 조례에 따라 황실 문양으로 규제되었고, 용봉문·운봉문·봉황화당초문·쌍봉문은 민간 문양으로 직물과 자기 등 공예품에 활발히 시문되었다. 봉황문에 대해 규제가 이루어지면서도 민간 유물에서 활발히 활용되는 현상이 일견 대치되는 상황으로 보이나, 오히려 원대 봉황문은 선호되는 문양으로서 황실 문양과 민간 문양으로 이원화되어 제작에 널리 활용된 것이다. 원대 봉황문 애용 현상은 몽골제국이 차지한 넓은 영토를 따라 확장되었는데, 서아시아에서는 봉황이 새로운 문양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마찬가지로 원대 봉황 도상과 문양 유형은 고려에도 전달되었고, 고려 후기 불복장 납입 봉황문 직물과 원대 유적 출토 봉황문 직물 간 유사성은 원대 봉황문과 애용 현상이 고려에도 공유되었음을 말해준다.
13세기 말~14세기 초 봉황문 상감청자는 봉황 도상과 문양 유형에서 원과 영향 관계가 확인된다. 물결형 꼬리 도상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꼬리(당초형+물결형)를 가진 봉황 도상들이 하나의 기물에 함께 활용되기도 하였고, 원대 민간 문양인 용봉문·운봉문·봉황화당초문·쌍봉문의 다양한 봉황문 유형이 최고급 상감청자에 시문되었다. 특히 용봉문 상감청자는 원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것으로, 13세기 말~14세기 초 한정된 시기에 제작이 이루어지며 1314년 원에서 발령된 용봉문 규제가 고려에 전달되어 용봉문 소실이 야기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용봉문은 13세기말 원에 진상된 최고급 자기인 화금청자의 문양으로도 활용되는데, 이는 1278년 ‘衣冠改變令’ 반포를 계기로 고려 사회에 폭넓게 전파되기 시작한 원의 문물이 일정 기간 수용기를 거쳐 13세기말에 비로소 최고급 자기 제작에 응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려 후기 봉황문 상감청자는 13세기~14세기 몽골제국 영토에서 확산된 봉황문 애용 현상이 고려에서도 공유된 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前代 문양 양식을 계승하고 변화시킴으로써 외부 요소를 내재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원대 봉황문의 성행과 고려 유입
Ⅲ. 13세기 말~14세기 초 봉황문 상감청자의 제작과 신경향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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