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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엄기영 (대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전문학회 고전문학연구 고전문학연구 제5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7 - 4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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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유원표의 행적과 그가 남긴 시문, 그리고 <몽견제갈량>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그의 동아시아 정세 인식의 추이를 고찰한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러일전쟁 이전 조선에서는 人種論에 기반한 삼국제휴론이 널리 퍼지고 있었는데, 이는 만주를 점령한 러시아의 위협 때문이었다. 이에 반해 당시 유원표는 러시아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긴 했지만, 그것이 인종론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일본을 제휴의 대상보다는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둘째, 러일전쟁은 유원표가 인종론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원표는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힘에 찬탄을 금치 못하는데, 이러한 찬탄은 당시 조선의 상황과 대비되어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원표는 일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장차 한·청·일 삼국이 鼎峙하여 동양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셋째,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노골적으로 진행하였고, 결국 을사늑약으로 이어졌다. 이런 점에서 <몽견제갈량>은 ‘러일전쟁 승리의 환희와 을사늑약의 충격’ 사이에서 유원표가 나름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앞날을 모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각 시대마다 主點과 客點이 있다는 전제 하에 러일전쟁 이후를 인종경쟁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정세를 설명하였다. 넷째, 을사늑약 이후 활발한 계몽활동을 벌이던 유원표는 망국을 전후로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변모에는 일본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경험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 ‘문명의 기준’ 일본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와 현실적인 이익만이 동기이자 목적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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