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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상수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82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73 - 30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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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이승만의 사적통치기반의 형성과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첫째 장에서는 이승만이 사적통치기반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이승만은 집권초기 불안정한 상태로 출발해야 했다. 초대 내각에서 한민당을 배제하면서 정치적으로 반대파를 형성하게 했으며, 군과 경찰 같은 공적기구에 대한 통제력도 약했다. 이승만은 이런 상황을 사적통치기반을 통해 돌파하려 하였다. 이승만은 대한청년단으로 청년단체를 통합하면서 총재로 추대되고 단장을 임명하면서 기존의 청년단체를 핵심 통치기반의 하나로 확보할 수 있었다. 더구나 대한청년단의 출범부터 자신에게 충성을 할 수 있는 신성모를 단장으로 임명함으로써 통제력을 강화해 갈 수 있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사적통치기반이 확대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승만은 공적기구로 명시되어 있는 예비 병력인 호국군을 해체하고 청년방위대를 창설하면서 대한청년단을 청년방위대로 전환시키려고 하였다. 법적으로 공식조직인 호국군 대신 청년방위대를 창설한 것은 국가재정의 확대를 통해 입법부를 강화시키지 않으면서 인적통치기반의 확충을 꾀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세 번째 장은 사적통치기반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했는가를 다루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대한청년단이나 청년방위대 등 기존 조직은 큰 타격을 입었고 그를 보완하기 위해서 청년방위대를 해체하고 국민방위군을 조직하였다. 이를 통해 사적통치기반의 숫자를 보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리와 횡령, 관리태만이 겹쳐져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한 국민방위군 사건이 발생하면서 활용시도는 무산되었다. 이와 더불어 부산정치파동 등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억압하고, 자유당을 창당하면서 국회 내에서 이승만의 의도가 관철되는 것이 가능해지는 한편 경찰과 군 등의 공적기구에 대한 장악이 가능해지면서 사적통치기반의 역할은 감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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