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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익모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日本思想 제40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55 - 175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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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오지센닌도신(八王子千人同心)은 다케다(武田) 가문의 고비토가시라(小人頭)에 의해 통솔되었던 군사집단으로 에도시대에는 막부의 야리부교(?奉行)에 소속된 센닌가시라 아래서 하치오지를 중심으로 영국내의 경비와 일광동조궁의 경비를 주 임무로 하는 무사의 역(役)을 수행하였지만 신분으로서는 백성으로 간주되었다. 센닌도신은 무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집단으로 시작되었지만 평화가 계속됨에 따라 박봉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으로 임무시 이외에는 농업에 종사하여 백성의 역을 겸하는 존재가 되었다. 신분상으로는 농민의 취급을 받아왔으나 18세기에 들어와 무사의 신분의 상징인 성(姓)의 사용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센닌도신의 주장은 종문개인별장(宗門改人別帳)에 성의 기입을 주장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주장은 종문개인별장 작성 담당자였던 나누시(名主)들에게 거부당해 결국 막부에게까지 보고되었다. 그러나 막부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허가하지 않았다. 한편 메야스바코(目安箱)를 통한 소송이나 나누시 겸업의 금지, 봉록이 적어 농업 겸업을 허가한다는 문서, 전답의 소지를 불허하는 등 무사로서의 취급을 하고 있었던 사료들이 다량 존재한다. 이는 막부가 역(役)을 기준으로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를 사회적 근간으로 채용하면서도 신분간의 경계에 있던 존재들에게 편의에 따라 신분을 규정하였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신분이 정치적, 국가적 질서에 의해 고정되었다는 이시모다 쇼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며 에도막부에 있어 정치적, 국가적 질서는 초기에 막부가 정한 신분제를 유지시키기 위한 모순된 법적용에 의해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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