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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현혜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한국문화연구 한국문화연구 제39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31 - 17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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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에 대한 일본과 조선의 언론 반응을 분석함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양국 사회의 반응을 살펴보고, 이 운동의 위상을 1919~1921년 당대의 관점에서 가늠해보고자 한다. 일본에서는 『고쿠민신문(國民新聞)』, 『도쿄아사히신문(東京朝日新聞)』, 『요로즈초호(万朝報)』, 『미야코신문(都新聞)』,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 등 다섯 종의 신문이 총 여덟 편의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을 보도한 바 있다. 일본 언론은 ‘선교사 배후설’ 내지 ‘선교사 영향설’을 지속적으로 제기함으로써, 독립운동에 있어서 조선인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조선인의 정치운동을 끝없이 외부에 의해 사주·선동된 운동으로 폄하하려는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을 계기로, 일본 주요 언론들이 김마리아를 비롯한 조선 여성 운동가들의 성명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3·1운동 이전 일본 신문들이 조선 여성들을 단순히 ‘여학생’ 혹은 소속 학교나 단체의 이름으로 뭉뚱그려 다루었던 것과 대조된다. 이러한 점에서, 김마리아는 일본 사회가 가진 종래의 조선 여성관에 균열을 일으켰으며, 그가 주도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조선 여성들을 조선 남성들에 버금가는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자각하게 만든 최초의 계기 중 하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조선 언론의 경우, 『매일신보』가 24편, 『조선일보』가 19편, 『동아일보』가 37편의 관련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여기에 해외에서 활동했던 언론 『독립신문』의 기사 6편, 『신한민보』의 기사 한 편을 더해 총 87편의 조선 언론 기사가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그 회장 김마리아에 대해 다루었다. 본고는 해당 기사들을 분석함으로써, 김마리아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을 통해, 3·1운동 전후 고조되는 민족주의의 물결 속에 있었던 조선 사회가 사실상 처음으로 독립운동가로서의 조선 여성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자각·수용하게 되었음을 주장한다. 물론 당시 조선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에 따르면, 여전히 독립운동이란 주류 엘리트 남성이 주도하는 것이며, 여성 주체들은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제 막 이러한 민족주의적 흐름 속에 인정되고 포함된 것일 따름이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김마리아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향후 여성운동과 독립운동이 교집합을 이루어가며 전개될 일련의 역사적 과정에서 하나의 원점으로 부상했으며, 이러한 의미를 당대의 조선 언론들이 포착하고 있었다는 데에는 일정한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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