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승환 (가디언문화유산연구원)
저널정보
(사)한국문화유산협회 야외고고학 야외고고학 제40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37 - 61 (2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우리나라에서 飯床을 이용한 식사방식이 등장하고 정착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漆器 案이 낙랑 목곽묘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한사군이 설치되는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낙랑군의 案과 飮食器는 중국 사천지역에서 수입된 것으로 당시 漢의 식사도구와 큰 차이가 없다. 이는 낙랑군 지배층이 漢과 동일한 음식문화를 영위하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기의 한반도에는 반상의 출토사례가 없으므로 아직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낙랑의 반상을 이용한 식사법은 점차 고구려와 백제 등 주변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입증할만한 자료는분명하지 않다. 고구려에서는 무용총, 각저총, 안악 3호분 벽화를 통해,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飯床이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식사방식은 좌식을 기본으로 하며, 飯床으로 案이 주로 사용되었다. 백제에서는 한성기부터 굽이 낮은 고배와 삼족기가 출토되며, 대부분의 음식기종이 등장한다. 따라서 盤에서 案으로 반상의 변화를 추정해볼 수 있으나 출토자료가없어 명확하지 않다. 다만 웅진기의 무령왕릉 출토 제대를 통해 盤과 案을 필요에 따라 혼용하였을 거라 여겨진다. 그러나 사비기에는 관북리 출토 목제품에서 보듯 주로 안을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신라에서는 조립식 상의 부재가 출토되었으나, 이는 형태상 飯床 보다 책상으로 판단된다. 신라는 천마총 출토 漆盤에서 보듯, 5세기까지 盤이 주로 반상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6세기에는 굽이 낮은 단각고배로 변화하는 양상으로 보아 이 무렵부터 案으로 변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