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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염중섭(자현) (중앙승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학회 한국불교학 한국불교학 제97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87 - 31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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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은 1930년 4월의 『불교』 제70호에 「해동초조에 대하야」를 발표한다. 이 글은 한암의 선불교와 관련된 다른 글과 달리 종명(宗名)과 종조론(宗祖論)을 제시하는 논거 중심의 찬술이다. 당시는 일제가 조선불교를 일본불교에 병합하려고 2차례나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상황이다. 또 이와 같은 일제의 병합 노력은 1941년 조선불교조계종(朝鮮佛敎曹溪宗)이 창종되어서야 일단락된다. 이런 점에서 한암이 제시한 종명과 종조론은 일본의 야욕을 차단하고 일본불교와 한국불교를 명확하게 분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높은 연구의의를 확보한다. 또 한암이 왕통론(王統論)을 내세워 도의(道義)를 초조(初祖)로 하는 조계종의 구성방식과 사상적인 중심인물로 보조(普照)를 강조한 것은, 이후 한국불교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된다. 또 한암은 기존의 태고초조설(太古初祖說)을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태고를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이는데, 이는 ‘도의(道義) → 보조(普照) → 태고(太古)’의 연결점이 가능하게 한다. 한암이 「해동초조에 대하야」에서 주장한 관점들은, 이후 1941년에 창종되는 조선불교조계종에 의해서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는 해방 이후 혼란기의 불교 종단과 1962년 창종되는 대한불교조계종에 의해서 계승되는 면모를 보인다. 이는 한암의 관점과 인식이 비단 일제강점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유효한 중요한 가치임을 분명히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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