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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손신영 (한국미술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불교사연구소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연구 제16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99 - 13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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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사는 광해군대 성릉의 능침사찰로 지정된 이래로 조선후기 내내 왕실후원이 이어졌던 곳이다. 1887년의 화재로 주요 불전이 소실된 이후 퇴락되어 그 규모와 장엄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광해군대에 조성된 사리탑이 현전하고 있어 주목되는 곳이다. 봉인사세존사리탑은 일제강점기에 불법적으로 약탈되어, 일본으로반출되었다가 60년 만인 1987년, 사리기·중수비 등과 함께 반환되었다. 사리탑의 약탈은 친일파 이호영이 가담한 사리기 절취로 시작되었다. 이후 사리기를 비롯한 사리탑 관련 문화재 일체가 일본인 이와다센소에게 매각되었다. 이와다센소는 1920년 봄에 사리탑을 신고·등록하지 않고 일본으로 반출하려다 법적문제에 봉착하게 되자 남산에 있던 동본원사 별원에 위탁하였다. 1937년 들어, 일연구논문봉인사세존사리탑의 이주내력과 조형* 손신영(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 42) * 이 글을 완성하는데 김민규박사(동국대)의 도움이 컸음을 밝힌다. 이 자리를 빌려감사드린다. 『한국불교사연구』(Journal for the Study of Korean Buddhist History) 제16호, pp.99~138, 서울: 한국불교사학회, 2019.12.31 100 한국불교사연구_ 제16호(2019.12.31) 본으로 반출하였으나 기증 직전까지 오사카시립미술관에 맡기고돌보지 않았다. 조형적으로 보면, 봉인사세존사리탑은 태종대 조성된 무학대사탑과매우 유사하지만, 옥개석과 상륜부의 비례는 조선시대 조성된 세존사리탑을 따랐다. 난간석은 창경궁 통명전 연지의 것과 동일하므로, 17세기 당시 國工에 의해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봉안장소는, 흥천사사리탑이 사리전에 조성되어 있었던 것처럼 탑법당 내부에봉안되었던 것으로 추론하였다. 약탈과 반출, 반환을 거치며 봉인사세존사리탑은 훼손되고 원형을잃은 부분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불법적으로 도난되었다가 관련문화재 일체와 함께 동시에 반환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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