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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심봉근 (동아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재단 문물연구 문물연구 제33권 제33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7 - 5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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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에 왜군 주도로 국내에 축조한 성곽을 우리는 보통 왜성倭城이라 명칭하고 드물게 증성甑城 또는 증산성甑山城이라고도 한다. 사실 왜성이란 왜의 성이라는 의미로서 일본에서는 당시의 성을 전국성戰國城 또는 근대성近代城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증성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시루와 닮았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라는 정도로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있다. 최근 필자는 부산이라는 지명이 증산에서 유래되었다는 기존의 사실들이잘 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바 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수집과정에서 놀랍게도 증산 또는 증산성이 위치하는 곳이 대부분 왜성이 위치하는 곳과 일치한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문헌상에 나타나는 왜성과 증성관계 자료를 분석하고 왜성이라는 명칭 사용의 보편성과 증성의 의미를 새롭게 파악하였다. 아울러 왜성과 일본 근세성곽의 원류에 대해서도 검토하여 보았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왜성이란 명칭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에 왜군 주도로 우리나라 국내에 축조한 성곽에 대해서 왜성倭城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조선실록 등 조선시대 공식문헌에서 왜성이라는 단어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구분되는 것은 동일시기에 일본국내에 일본인이 축조한 성곽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성이라 명창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왜성이라는 명칭은 조선 조정에서 왜인들 주도로 국내에서 축조한 성이라는 의미에서 주로 사용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다음은 증성 또는 증산성이라는 명칭이다. 이 명칭은 성의 형태가 시루를 닮았 거나 아니면 시루를 닮은 산에 성이 위치하여 붙인 명칭으로 우리들은 이해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문헌상 증산이나 증성이라는 명칭이 임진왜란을 경계로 그이전과 이후로 구부해서 의미를 달리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부산의 대증현, 양산과 거제의 증산과 같이 이전에 기록된 명칭은 대부분 시루산 또는 시루산성과 같이 산의 형태를 보고 명명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을 한자로 풀이해서 기록하는 과정에서 증산이나 증산성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울산증성, 서생포증성, 부산증성, 사천증성, 양산증산성 등은 임진, 정유 양란 때 축조한 왜성에 대한 별칭 으로 사용된 듯하다. 증성 또는 증산성이 왜성의 형태를 보고 명칭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지만 필자가 이미 지적한 것과 같이 일본에서 성을 시로し ろ라고 훈독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하겠다. 당시 왜인들이 왜성을 시로しろ 또는 오시로おしろ라 부르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로しろ를 시루라고 명침하는 과정에서 한자 ‘甑’으로 표기한 것에 연유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사실이 라면 증성은 성성이라는 의미가 되며 마치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역전앞 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마지막 왜성의 기원이 되는 일본 근대성곽의 시작 문제이다. 일본 고유의 것으로 설명하는 연구자가 대부분이다. 전국시대 말 일본성곽은 산성에서 평산성으로 입지가 바뀌어 지고 석축, 해자, 토루, 천수각 등 성의 내외 구조에 있어서 다곽식의 새로운 변혁이 나타난다. 성내는 철포 이용이 용이한 보병적 전투기능과 하늘에 맞닿는 오중칠탑의 종교기능 건물 그리고 성주의 거관 등 복합된 특수구조와 기능이 요구되면서 화려하고 장대해 진다. 가장 먼저 축조된 노부나가의 아즈치성은 1576년에 시작하여 1579년에 완공된다. 하비르가 가고시마에 도착한지 20년 후의 일이다. 현재 알려진 아즈치성의 조감도는 유럽지역 15세기-16세기 성곽들과 매우 닮고 있다. 철포, 화약을 비롯한 천주교 등 서양문물의 일본전입 과정에서 근대성곽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왜성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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