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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경철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백제연구 제6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7 - 36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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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쌍탑의 기원은 통일신라의 사천왕사지의 쌍목탑이고 남아있는 가장 오랜 쌍탑은 감은사 쌍탑으로 알려져 왔다. 본 글은 익산 미륵사의 3탑을 가운데 목탑, 양 옆의 석탑을 쌍석탑으로 분해하여 한국 쌍탑의 기원을 미륵사로 추정해 보았다. 익산 미륵사는 미륵신앙에 의한 사찰이므로 중금당의 주존은 미륵불임에 틀림없다. 나머지 동서금당의 주존이 미륵이 아니라면 두 금당에는 미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처가 모셔졌을 것이다. 미륵경전에는 미륵이 장차 성불하리란 수기를 준 석가모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동서금당 중 하나는 석가를 모셨을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한 곳은 미륵과 석가 모두와 관련 있는 다보불일 가능성이 높다. 법화경에 의하면 다보탑 안에 나란히 앉아있는 석가와 다보에게 미륵이 두 분의 신기한 인연을 묻고 설법을 청하고 있다. 서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안기에는 미륵이 아니고 법왕이 주인공이다. 법왕은 석가모니의 다른 말이며 미륵사 창건의 주역인 사택왕후의 불교신앙은 같은 성씨의 사택지적과 마찬가지로 법화신앙에 가깝다. 서석탑이 석가와 관련 있다면 나머지 동탑과 동금당은 다보불이 되겠다. 결론적으로 미륵사는 중원에 미륵, 동원에 다보, 서원에 석가를 모신 구조였다. 중원의 발원자는 선화공주로 동서원보다 적어도 10년 전에 만들어졌다. 중금당에는 미륵을 모시고 앞에는 9층의 목탑을 세웠다. 이때의 가람배치는 1탑 3금당[혹은 1탑 1금당]이었다. 이후 사택왕후가 동서원 또는 동서원의 금당 앞에 석탑을 세웠고 3탑 3금당의 가람배치로 변하였다. 동서탑은 사리봉안기의 법왕에 근거하여 석가와 다보로 볼 수 있다. 미륵사에서 가운데 목탑이 있지만 돌로 만든 두 개의 탑을 세운다는 것은 쌍탑을 세운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가 된다. 물론 한 금당 앞에 두 개의 탑이 세워진 전형적인 쌍탑 양식은 아니지만 미륵사에서 가운데 목탑을 사이고 두고 대칭으로 서 있는 쌍석탑은 이후 신라 사천왕사의 쌍목탑이나 신라 감은사의 쌍석탑의 전형적인 쌍탑 가람에 단초를 열어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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